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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산장안에는 초들이 많았다.
게다가 초들은 모두 청동으로 된 고급스러운 촛대에 꽂혀 있었다.
" 여기 가끔씩 누가 오긴 하나봐 "
현규의 약간은 오버하는 목소리에 모두들 고개만을 끄덕이며 수긍했다.
어두워지고 초를 켜둔 후부터 왠지 모르게 움츠려 들게하는 무거운 분위
기가 모두를 억누르고 있었다.
현규는 무거운 분위기를 깨려는듯 소란스레 말을 이어갔다.
" 그래도 이렇게 산장에라도 들어온게 어디야. 밖을 봐,
아직도 난리다.. "
창밖을 보니 어두운 밤 하늘에 아직도 하얀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는게
보였다. 울부짖는듯한 소리도 더 커지는것 같았다.
" 우리 밥먹은거 소화 시킬겸 2층에 한번 올라가 볼까? "
" 맞다, 아까보니 저쪽에 계단 있던데..
2층은 어떻게 생겼을까? "
현규의 제안에 지혜만이 대꾸를 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동의는
아니었다.
" 아까 밝을때 올라가부지 그랬어.. 이 밤중에 안그래도
분위기 수상한 곳에 왜 가볼려고 그래? "
내 말에 현규가 살짝 기분이 상했는지 빈정거리듯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 군대도 빡센데 다녀온놈이 겁은 많아가지구...쯧..
냅둬라, 나 혼자 가볼란다. "
현규는 일어서더니 나무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촛대 하나를 들고선 꺾여있
어 보이지 않는 주방쪽의 어둠속으로 사라져 갔다.
" 어, 현규오빠! 오빠!!... 혼자 가버리네..
오빠, 오빠가 가서 말려봐요. "
내 옆에 앉아있던 지혜가 내 팔을 잡으며 부탁을 해왔다.
내가 잠시 머뭇거리자 조용히 있던 지영이도 입을 열었다.
" 그래요.. 가서 말려요. 사실 아까..
나 때문에 기분이 좀 상해 있을 거에요.. "
지영이 때문에...? 거절 당했나..?
아항... 그래서 저녀석이 그렇게 신경질적이었군...
난 약간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일어섰다.
" 니들은 여기에 있어.. "
난 벽난로 위에 있던 촛대를 하나 집어들고 현규가 사라진 방향으로 걸음
을 옮겼다.
" 조심해요 "
돌아보진 않았지만 지영이의 목소리인것 같았다.
날 걱정해 주는 건가..?
난 돌아보진 않은채로 손을 들어 걱정 말라는 표시를 했다.
낮에도 그랬지만 어두워진 산장은 정말로 으스스 했다.
촛불을 들고 있지 않았다면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을만한 어둠이었다.
평소 도시속에서 살땐 진정한 어둠을 알 수 없다.
자기집 불을 다 꺼놓더라도 이웃집.. 하다 못해 멀리 보이는 교회의 십자
가 불빛이라도 어둠을 어느 정도 희석시키기 마련이다.
하지만 여긴 적어도 사방 몇킬로 내엔 아무것도 없는 산속 산장이었고
게다가 미친듯 휘몰아치는 눈보라가 달빛도 별빛도 모두 삼켜 버려
빛이라곤 존재하지 않았다.
현규녀석이 들고간 촛불까지 더하면 여섯개 였나..?
난 어느샌가 산장안에 켜둔 촛불의 숫자를 맘속으로 헤아리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녀석.. 어디까지 가버린거야..
계단앞까지 갔지만 현규녀석은 이미 2층으로 올라가 버렸는지 불빛도 보
이지 않았다.
여길 올라가야 하나...
이 산장에 처음 들어서서 이 계단을 슬쩍 훑어 보았을때, 묘한 공포감
에 전신이 잠시 죽은듯 멈춰 섰었던 그 느낌이 다시 되살아 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되돌아가기엔 여자애들도 있는데 쪽팔릴 일이었다.
난 심호흡으로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나무계단에 발을 올려 놓았다.
끼익....
발을 올려놓기가 무섭게 오래된 나무계단에서 심하게 삐걱거리는 소리가
울려나왔다. 마치 잠자고 있던 계단이 내 발에 밟혀 깨어나는것 같았다.
그랬다.. 바보같지만 계단은 살아 있는 것 같았다.
" 오빠! 무슨 소리에요? "
소리가 크긴 컸나보다. 저 너머에 있던 지혜의 목소리였다.
" 아니야! 계단에서 나는 소리야! "
고개를 돌려 대답을 해주고 다시 고개를 돌린 나는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사람의 형태에 깜짝 놀라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 하하하하! 자식.. 열나 쫄았구만!! "
현규 녀석이었다.
" 이자식이... "
" 훗, 바보 아니야.. 계단에서 이렇게 소리가 나는데도 내가 올라간 줄
알았단 말야? "
" 놀랬잖아 색히야.. "
녀석의 장난에 욕지기를 하긴 했지만 사실 내가 바보스럽긴 했다.
그렇지.. 녀석이 올라갔다면 그 커다란 소리가 났을텐데...
" 야, 저쪽으로 가자. 여긴 도저히 무서워서 못 올라가겠더라 "
난 현규에 손에 끌려 가면서 고개를 돌려 계단을 바라보았다.
느낌 탓이었을까...
계단을 밟을때 마치 살아있는 뭔가를 밟듯 물컹거리는 것 같았었다..
신발이 너무 좋아서였나..
난 혼자서 피식 웃으며 계단으로부터 시선을 돌렸다.
계단은 우리가 멀어짐에 따라 서서히 어둠속으로 묻혀갔다.
" 우리 이렇게 만난것도 인연인데 더 가까워 지자는 의미로
진실게임 하는건 어때? "
" 와, 그거 재밌겠다."
현규의 장난 탓이었을까..
우리의 분위기는 어느새 밝아져 있었다.
분위기 매이커인 현규와 지혜는 정말 손발이 잘 맞았다. 현규가 제안하는
것마다 지혜는 흥이 나게 맞장구를 쳐주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 현규 녀석이 있어서 다행이야..
이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리는데 지영이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지영이는 지혜를 바라보고 있었다. 표정을 보니 내가 현규를 보며 했던
것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것 같았다.
" 자자~ 그럼 무슨 게임으로 할까? "
" 369 어때요 오빠? "
" 좋아, 뭐 어차피 진실게임이 주 목적이니깐.. "
둘의 합의에 나와 지영인 무조건 따라갔다. 그러나 전혀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였다. 지영이도 나와 같은 스타일 이었다.
" 9 "
" 짝 "
" 10 "
" 11 "
" 12 "
" 13..헛.. "
" 와하하 현규오빠 걸렸다! "
" 이런... "
네명이서 하는 게임이라선지 평소 게임을 잘하던 현규녀석이 첫타자가
되버렸다.
" 어쩔수 없지 내가 먼저 솔선수범 할께. 뭐든지 물어봐
아주아주 솔직하게 답해 줄테니깐 "
현규는 자신의 말처럼 뭐든지 물어보라는듯 팔짱을 낀채 눈을 감았다.
" 내가 먼저 물을래~ "
역시나 지혜가 먼저 나섰다.
" 음... 첫키스는 너무 약하구...
첫경험은 언제 누구와 어디서? "
오호라... 처음부터 아주 강한 질문이 나왔다.
저녀석이 그런걸 기억하고 있을려나..
난 흥미롭게 플레이보이의 대답을 기다렸다.
" 음... 고1때 교회누나랑 교회 사무실에서 "
" 와우~ "
" 하핫.. "
녀석의 거침없고도 충격적인 고백에 모두의 입에선 저절로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고등학교때부터 친구였던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 현규오빠 역시나 얼굴값하네~ "
" 훗..뭘.. 이정도 가지구.. "
" 지영아 너도 질문해봐 "
지혜의 말에 지영이는 잠시 고민하더니 살짝 웃으며 물었다.
" 그 교회누나를 사랑했어요? "
지영이의 귀여운 질문에 모두들 어이없다는듯 웃고 말았다.
" 야~ 질문이 그게 뭐야~ "
" 야야, 대답할 내가 다 기운이 빠진다. "
" 그래도 질문은 질문이니깐.. 대답해라 현규야 "
" 그러지 뭐, 사랑..사랑이라...
잘은 기억이 안나지만 어느정도는 사랑했던것 같아.. "
역시나 뻔한 대답이었다.
" 것봐~ 진실게임에서 이런 질문을 하다니 "
지혜는 툴툴 거리며 시선을 지영이에서 내게로 옮겼다. 내 차례였다.
" 난 뭐.. 마땅히 물어볼게 없지만..음...
그래, 너 지금까지 했던 짓중에 가장 심한 범죄가 뭐였냐? "
" 이야~ 오빠 질문은 괜찮은걸~ "
" 거참..자식..곤란한 걸 묻네.. "
현규녀석은 시선을 위로 향하며 과거의 기억들을 책장 넘기듯 빠르게
넘겨 보는듯 했다.
그런데...
장난스러운듯 입가에 미소를 달고 있던 현규의 표정이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지더니 뭔가 엄청난 기억이 난듯 서서히 얼굴이 굳어갔다.
" 왜... 왜... 그걸 잊고 있었지... "
현규의 갑작스런 모습에 우린 약간 당황했다. 하지만 녀석의 장난끼를
아는 난 또 장난이려니 하며 녀석에게 한마디 해줬다.
" 그런 유머는 안통해.. "
" 그래요 오빠~ 유치해~ "
하지만 현규는 아까보다 더 얼굴이 굳어갔고 눈동자는 더 커져있었다.
" 나... 우리 누나를... 우리 누나를... "
현규는 앞에 놓인 테이블에 두손을 얹고는 온 몸을 바들바들 떨어댔다.
녀석의 표정은 공포에 잔뜩 질려 있는듯 했다.
우린 아무말도 못한채 그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 난 장난으로... 누나의 자전거 바퀴에... 압정을 붙여놨는데...
그게..그게.. 바퀴에 박히면서... 터져버렸어..
하필 그때... 맞은편에 트럭이 오고 있었는데...
그 바퀴 밑으로... 누나가... 누나가... "
" 그만해 현규야! "
나는 더이상 지켜볼 수가 없어 현규에게 다가가 녀석의 어깨를 양손으로
잡고 흔들었다. 지혜와 지영이는 겁에 질린듯 서로의 손을 잡은채 한편에
붙어 앉고 있었다.
" 흑..흐흑... 왜 이 기억이.. 이제서야... 왜.... "
어깨를 잡은 양손으로 느껴지는 녀석의 몸은 정말 사시나무 떨듯 떨리고
있었다. 분명 장난이 아니었다. 고통스러웠던 과거의 기억이...
그 무게 때문에 뭍혀 있었던 잔인한 기억이..죄책감이.. 하필이면
이 순간에 고개를 들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초들은 모두 청동으로 된 고급스러운 촛대에 꽂혀 있었다.
" 여기 가끔씩 누가 오긴 하나봐 "
현규의 약간은 오버하는 목소리에 모두들 고개만을 끄덕이며 수긍했다.
어두워지고 초를 켜둔 후부터 왠지 모르게 움츠려 들게하는 무거운 분위
기가 모두를 억누르고 있었다.
현규는 무거운 분위기를 깨려는듯 소란스레 말을 이어갔다.
" 그래도 이렇게 산장에라도 들어온게 어디야. 밖을 봐,
아직도 난리다.. "
창밖을 보니 어두운 밤 하늘에 아직도 하얀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는게
보였다. 울부짖는듯한 소리도 더 커지는것 같았다.
" 우리 밥먹은거 소화 시킬겸 2층에 한번 올라가 볼까? "
" 맞다, 아까보니 저쪽에 계단 있던데..
2층은 어떻게 생겼을까? "
현규의 제안에 지혜만이 대꾸를 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동의는
아니었다.
" 아까 밝을때 올라가부지 그랬어.. 이 밤중에 안그래도
분위기 수상한 곳에 왜 가볼려고 그래? "
내 말에 현규가 살짝 기분이 상했는지 빈정거리듯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 군대도 빡센데 다녀온놈이 겁은 많아가지구...쯧..
냅둬라, 나 혼자 가볼란다. "
현규는 일어서더니 나무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촛대 하나를 들고선 꺾여있
어 보이지 않는 주방쪽의 어둠속으로 사라져 갔다.
" 어, 현규오빠! 오빠!!... 혼자 가버리네..
오빠, 오빠가 가서 말려봐요. "
내 옆에 앉아있던 지혜가 내 팔을 잡으며 부탁을 해왔다.
내가 잠시 머뭇거리자 조용히 있던 지영이도 입을 열었다.
" 그래요.. 가서 말려요. 사실 아까..
나 때문에 기분이 좀 상해 있을 거에요.. "
지영이 때문에...? 거절 당했나..?
아항... 그래서 저녀석이 그렇게 신경질적이었군...
난 약간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일어섰다.
" 니들은 여기에 있어.. "
난 벽난로 위에 있던 촛대를 하나 집어들고 현규가 사라진 방향으로 걸음
을 옮겼다.
" 조심해요 "
돌아보진 않았지만 지영이의 목소리인것 같았다.
날 걱정해 주는 건가..?
난 돌아보진 않은채로 손을 들어 걱정 말라는 표시를 했다.
낮에도 그랬지만 어두워진 산장은 정말로 으스스 했다.
촛불을 들고 있지 않았다면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을만한 어둠이었다.
평소 도시속에서 살땐 진정한 어둠을 알 수 없다.
자기집 불을 다 꺼놓더라도 이웃집.. 하다 못해 멀리 보이는 교회의 십자
가 불빛이라도 어둠을 어느 정도 희석시키기 마련이다.
하지만 여긴 적어도 사방 몇킬로 내엔 아무것도 없는 산속 산장이었고
게다가 미친듯 휘몰아치는 눈보라가 달빛도 별빛도 모두 삼켜 버려
빛이라곤 존재하지 않았다.
현규녀석이 들고간 촛불까지 더하면 여섯개 였나..?
난 어느샌가 산장안에 켜둔 촛불의 숫자를 맘속으로 헤아리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녀석.. 어디까지 가버린거야..
계단앞까지 갔지만 현규녀석은 이미 2층으로 올라가 버렸는지 불빛도 보
이지 않았다.
여길 올라가야 하나...
이 산장에 처음 들어서서 이 계단을 슬쩍 훑어 보았을때, 묘한 공포감
에 전신이 잠시 죽은듯 멈춰 섰었던 그 느낌이 다시 되살아 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되돌아가기엔 여자애들도 있는데 쪽팔릴 일이었다.
난 심호흡으로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나무계단에 발을 올려 놓았다.
끼익....
발을 올려놓기가 무섭게 오래된 나무계단에서 심하게 삐걱거리는 소리가
울려나왔다. 마치 잠자고 있던 계단이 내 발에 밟혀 깨어나는것 같았다.
그랬다.. 바보같지만 계단은 살아 있는 것 같았다.
" 오빠! 무슨 소리에요? "
소리가 크긴 컸나보다. 저 너머에 있던 지혜의 목소리였다.
" 아니야! 계단에서 나는 소리야! "
고개를 돌려 대답을 해주고 다시 고개를 돌린 나는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사람의 형태에 깜짝 놀라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 하하하하! 자식.. 열나 쫄았구만!! "
현규 녀석이었다.
" 이자식이... "
" 훗, 바보 아니야.. 계단에서 이렇게 소리가 나는데도 내가 올라간 줄
알았단 말야? "
" 놀랬잖아 색히야.. "
녀석의 장난에 욕지기를 하긴 했지만 사실 내가 바보스럽긴 했다.
그렇지.. 녀석이 올라갔다면 그 커다란 소리가 났을텐데...
" 야, 저쪽으로 가자. 여긴 도저히 무서워서 못 올라가겠더라 "
난 현규에 손에 끌려 가면서 고개를 돌려 계단을 바라보았다.
느낌 탓이었을까...
계단을 밟을때 마치 살아있는 뭔가를 밟듯 물컹거리는 것 같았었다..
신발이 너무 좋아서였나..
난 혼자서 피식 웃으며 계단으로부터 시선을 돌렸다.
계단은 우리가 멀어짐에 따라 서서히 어둠속으로 묻혀갔다.
" 우리 이렇게 만난것도 인연인데 더 가까워 지자는 의미로
진실게임 하는건 어때? "
" 와, 그거 재밌겠다."
현규의 장난 탓이었을까..
우리의 분위기는 어느새 밝아져 있었다.
분위기 매이커인 현규와 지혜는 정말 손발이 잘 맞았다. 현규가 제안하는
것마다 지혜는 흥이 나게 맞장구를 쳐주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 현규 녀석이 있어서 다행이야..
이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리는데 지영이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지영이는 지혜를 바라보고 있었다. 표정을 보니 내가 현규를 보며 했던
것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것 같았다.
" 자자~ 그럼 무슨 게임으로 할까? "
" 369 어때요 오빠? "
" 좋아, 뭐 어차피 진실게임이 주 목적이니깐.. "
둘의 합의에 나와 지영인 무조건 따라갔다. 그러나 전혀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였다. 지영이도 나와 같은 스타일 이었다.
" 9 "
" 짝 "
" 10 "
" 11 "
" 12 "
" 13..헛.. "
" 와하하 현규오빠 걸렸다! "
" 이런... "
네명이서 하는 게임이라선지 평소 게임을 잘하던 현규녀석이 첫타자가
되버렸다.
" 어쩔수 없지 내가 먼저 솔선수범 할께. 뭐든지 물어봐
아주아주 솔직하게 답해 줄테니깐 "
현규는 자신의 말처럼 뭐든지 물어보라는듯 팔짱을 낀채 눈을 감았다.
" 내가 먼저 물을래~ "
역시나 지혜가 먼저 나섰다.
" 음... 첫키스는 너무 약하구...
첫경험은 언제 누구와 어디서? "
오호라... 처음부터 아주 강한 질문이 나왔다.
저녀석이 그런걸 기억하고 있을려나..
난 흥미롭게 플레이보이의 대답을 기다렸다.
" 음... 고1때 교회누나랑 교회 사무실에서 "
" 와우~ "
" 하핫.. "
녀석의 거침없고도 충격적인 고백에 모두의 입에선 저절로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고등학교때부터 친구였던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 현규오빠 역시나 얼굴값하네~ "
" 훗..뭘.. 이정도 가지구.. "
" 지영아 너도 질문해봐 "
지혜의 말에 지영이는 잠시 고민하더니 살짝 웃으며 물었다.
" 그 교회누나를 사랑했어요? "
지영이의 귀여운 질문에 모두들 어이없다는듯 웃고 말았다.
" 야~ 질문이 그게 뭐야~ "
" 야야, 대답할 내가 다 기운이 빠진다. "
" 그래도 질문은 질문이니깐.. 대답해라 현규야 "
" 그러지 뭐, 사랑..사랑이라...
잘은 기억이 안나지만 어느정도는 사랑했던것 같아.. "
역시나 뻔한 대답이었다.
" 것봐~ 진실게임에서 이런 질문을 하다니 "
지혜는 툴툴 거리며 시선을 지영이에서 내게로 옮겼다. 내 차례였다.
" 난 뭐.. 마땅히 물어볼게 없지만..음...
그래, 너 지금까지 했던 짓중에 가장 심한 범죄가 뭐였냐? "
" 이야~ 오빠 질문은 괜찮은걸~ "
" 거참..자식..곤란한 걸 묻네.. "
현규녀석은 시선을 위로 향하며 과거의 기억들을 책장 넘기듯 빠르게
넘겨 보는듯 했다.
그런데...
장난스러운듯 입가에 미소를 달고 있던 현규의 표정이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지더니 뭔가 엄청난 기억이 난듯 서서히 얼굴이 굳어갔다.
" 왜... 왜... 그걸 잊고 있었지... "
현규의 갑작스런 모습에 우린 약간 당황했다. 하지만 녀석의 장난끼를
아는 난 또 장난이려니 하며 녀석에게 한마디 해줬다.
" 그런 유머는 안통해.. "
" 그래요 오빠~ 유치해~ "
하지만 현규는 아까보다 더 얼굴이 굳어갔고 눈동자는 더 커져있었다.
" 나... 우리 누나를... 우리 누나를... "
현규는 앞에 놓인 테이블에 두손을 얹고는 온 몸을 바들바들 떨어댔다.
녀석의 표정은 공포에 잔뜩 질려 있는듯 했다.
우린 아무말도 못한채 그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 난 장난으로... 누나의 자전거 바퀴에... 압정을 붙여놨는데...
그게..그게.. 바퀴에 박히면서... 터져버렸어..
하필 그때... 맞은편에 트럭이 오고 있었는데...
그 바퀴 밑으로... 누나가... 누나가... "
" 그만해 현규야! "
나는 더이상 지켜볼 수가 없어 현규에게 다가가 녀석의 어깨를 양손으로
잡고 흔들었다. 지혜와 지영이는 겁에 질린듯 서로의 손을 잡은채 한편에
붙어 앉고 있었다.
" 흑..흐흑... 왜 이 기억이.. 이제서야... 왜.... "
어깨를 잡은 양손으로 느껴지는 녀석의 몸은 정말 사시나무 떨듯 떨리고
있었다. 분명 장난이 아니었다. 고통스러웠던 과거의 기억이...
그 무게 때문에 뭍혀 있었던 잔인한 기억이..죄책감이.. 하필이면
이 순간에 고개를 들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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