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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한동안 아무 말없이 그렇게 앉아 있었다.
현규의 흐느낌이 사그라 들 무렵 내가 먼저 입을 열어 적막을 깼다.
" 너무 힘들어하지마 현규야..
다 니 잘못이라고만 생각하지마..
누나의 운명이었다고 생각해 현규야..
누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꺼야.. "
" 그래요, 현규오빠.. 너무 자책하지 말아요.. "
" 맞아요.. 그렇게 따지면 죄 짓지 않은 사람 하나도 없어요. "
내 말에 이어 지영이와 지혜가 위로의 말을 붙여갔다.
효과가 있었는지 현규는 머리를 들어 가볍게 웃어 보였다.
" 미안하다.. 내가 분위기를 망쳐 버렸네.. "
" 아니에요.. 이렇게 조용한 분위기도 나쁘진 않은걸요.. "
위로를 이어가는 지영이는 무릎을 세워 양팔로 다리를 감싸안고 있었다.
" 지영아 춥니? "
" 네.. 조금.. "
난 몸을 일으켜 벽난로로 다가가 굵은 장작 몇개를 던져 넣었다.
부지깽이로 몇번 들춰주자 사그라들던 불꽃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 이제 금방 따뜻해 질꺼야 "
" 고마워요 오빠.. "
" 뭘.. "
지영이의 고맙단 말에 내 기분은 한결 좋아졌다. 이런 내 마음속 변화를
눈치 챘는지 지혜가 한마디 던졌다.
" 오빠는 좋겠네~
오빨 바라보는 지영이 눈빛이 아까부터 수상하던데~ "
" 야~ 왜 그래... "
지영이는 지혜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쑥스러워 했다.
정말 내가 마음에 있는걸까...?
지금껏 내가 고백한적은 있었지만 날 좋아한다고 고백해오는 경우는
없었다. 설마 저렇게 이쁘고 귀여운 애가 나같은 놈을...
잠시 동안 행복한 상상에 빠질뻔 했던 난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 우리~ 게임같은거 말구 그냥 이야기 해요~ "
" 그래, 그러자.. "
지혜의 제안에 난 바로 동의를 했다.
왠지 이 산장에선 떠들고 노는것보단 조용히 이야길 나누는게 나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 지영이랑 지혜는 고향이 어디야? "
한결 밝아진 표정의 현규가 물었다.
" 음~ 난 서울에서 태어나 쭉 서울에서 자랐어요 "
" 전.. 강릉이 고향이에요.. 고등학교까지 그곳에서 지냈구..
지금도 부모님은 강릉에 계세요.. "
" 강릉... 거기 정말 이쁘지.. "
" 엥, 동준이 넌 가봤냐? "
" 오빠 강릉 와보셨어요? "
" 응.. 부대가 강원도 인제에 있어서..
휴가 복귀 할때 늘 강릉공항으로 갔었거든..
공항이 바다를 마주보고 있어서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할 땐
옆으로 누워서 유턴하듯 선회를 하는데
그때 왼쪽 창으론 바다만 보이고 오른쪽 창으론 하늘만 보이곤 했지..
뭐, 시내를 다녀보고 그러진 않았지만 하늘에서 본 모습도 이뻤구.. "
" 와우, 오빠네 집 부잣집인가 보네~ 비행기타고 다니구~ "
" 아냐, 군인은 상당히 디스카운트를 해주거든.. "
" 아항~ "
난 말을 하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현규의 표정을 살폈다.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계속해서 나쁜 기억들이 떠오르는듯 가끔씩 머리를
가로젖곤 했다.
불안했다. 녀석의 저런 모습을 본적이 없었기도 했고 이런 상황에 듬직한
버팀목이 되어줄 녀석이 흔들리는게 불안한 것이기도 했다.
그때였다..
지혜의 반응이 나타난건...
" 아... 이럴수가... 왜 그일이.. 그때의 일이.. 이제서야... "
좀 전까지만 해도 밝은 표정으로 분위기를 이끌던 지혜의 표정이 현규가
그랬듯 어떤 안좋은 기억에 의해 굳어가고 있었다.
" 지혜야... 왜 그래 너... "
지영이가 지혜의 팔을 붙잡으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내개 있어서 현규가 그렇듯, 지영이에겐 지혜가 버팀목 이었다.
" 이럴수가... 이럴수가...
내가 엄마 아빨 죽인거야... 내가... "
" 지혜야!! 그만둬!! "
난 서둘러서 지혜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어 봤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 난 그냥 장난처럼...
운전하고 있는 아빠눈을... 잠깐.. 아주 잠깐 가렸을 뿐이었는데.."
" 지혜야!! "
이미 지혜는 엎드려서 흐느끼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뭐야... 왜 번갈아 가면서 이러는거야..
내 머릿속은 복잡해져 버리고 있었다.
어느새 지영이가 지혜의 곁에 붙어 다독이고 있었다.
" 네 부모님이 돌아가신건 네가 아주 어렸을적 이었잖아..
네가 그랬을리도 없고 그랬다 하더라도 넌 너무 어렸기 때문에.. "
" 아냐!! "
지혜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에 난 깜짝놀라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지혜의 밝던 얼굴은 온데 간데 없었다. 잔뜩 일그러진 그녀의 얼굴엔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돼 있었다.
" 기억이 난단 말이야.. 네살때 일이지만.. 기억이 나버린다구..흐흑..
내가 우유를 먹다가.. 자동차 시트에 흘렸다구.. 아빠가 나한테
뭐라고 한걸... 내가 참지 못하구...흑... 내가...
정말 죽길 바랬단 말이야!! "
지혜의 마지막말..
정말 죽길 바랬단 말이야... 이말에 현규의 얼굴이 빠르게 일그러져 갔다.
현규도.. 현규도.. 누나가 죽길 바랬었단 말인가..
" 그만해 지혜야!! 그만 하라구!! "
표정이 일그러진건 현규뿐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지영이도 고통스러운듯
머리를 감싸쥐고 있었다.
지영이도 고통스러운 기억이 갑자기 떠오른듯 했다.
그때였다.
끼익....
이소리는...
끼익...
이 소리는...
끼익...
계단 소리였다.
이곳에선 보이지 않는 저 너머에.. 누군가가..아니 뭔가가..
계단을 밟고 있다...
끼익...
소리가 점점 커지는걸로 보아 2층에서 내려오고 있는것 같았다.
" 너희들도 들려? "
계단소리에 몸을 일으킨 나는 나머지 녀석들에게 물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고통스런 기억에 휩싸인채로 머리를 감싸쥐며
괴로워 하고 있었다.
끼익.....
끼익....
젠장!! 계단이 몇개 였었지?
이미 다 내려와 버린거 아니야?
끼익...
끼익....
.......
규칙적으로 들려오던 계단소리가 갑자기 멈춰졌다.
` 제기랄.. 다 내려온거야...
난 여전히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 녀석들을 내버려 둔채 벽난로로 다가가
쇠로된 부지깽이를 오른손에 집어 들었다.
그리곤 벽난로 위에 놓여있던 촛대를 왼손에 들곤 ㄱ자로 꺾인..
계단이 있는 그 공간으로 한발짝씩 발걸음을 올렸다.
` 이게 뭐야 도대체.. 뭐냐구!!
원래부터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던 산장이었지만.. 갑자기 모든 일이
꼬여버린듯 상황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각자의 머리속에 깊이 뭍혀있던.. 가장 잊고 싶어했던.. 아니 잊고 있었던
가장 끔찍했던 기억이, 죄책감이, 하필이면 같은 순간 다시 고개를 들어
모두를 괴롭히고 통제 불능의 상황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
게다가 갑자기 들려온 계단밟는 소리는 또 뭔가..
도대체 이 산장은 무엇인가..
저 소리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런생각을 하는 동안 난 꺾이는 지점에 다다라 있었다.
내가 들고 있는 흔들리는 촛불 때문에 계단이 있는 그곳은 마치 유령처럼
어둠과 빛이 얽혀 춤을 추는듯 보였다.
하지만..
보였다..
불빛은 계단앞에 서 있는 사람의 형태를 그 뒤에 있는 어둠과 구분짓게
해 주었다.
그 형태가 보이는 그 순간 내 몸은 강한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듯 몸 전체
에 강한 전율이 일어났다. 뒷걸음 치고 싶었지만 몸은 이미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 순간 등뒤로부터 지영이의 흐느낌 소리가 들려왔다.
" 오빠... 나... 나... "
` 뭐야.. 그런 말 하지말구 날 끌어 당겨줘..
내 바램과는 달리 움직이지 못하는 내 등뒤에서 지영이의 흐느낌 섞인
말은 계속 되었다.
" 나.... 지혜를... 지혜를...
죽였어!!.. "
...
...
지혜를 죽이다니..
지금 내 등뒤에서? 방금?
하지만 어감상.. 과거의 일을 고백하는듯 했다.
그렇다면 과거에 지혜란 친구가 있었던거야..?
난 내 앞에 서 있는 그 형체 때문에 여전히 뒤를 돌아 볼수가 없었다.
그 형체는 아직도 촛불이 또렷하게 밝혀줄 수 있는 사정권 안에 들어오지
않은채로 멈춰서 있었다.
내 눈은 끊임없이 어둠에 익숙해지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럴수록 조금씩 그 형체의 윤곽이 분명해 지고 있었다.
분명 사람의 모습이었다.
" 오빠... 난 지혜를 죽였어...
절벽에서... 살짝 밀었을 뿐인데... 눈에 미끄러져서..
지혜는 떨어져서... 머리가 깨져 죽고 말았어...흐흑..
난 그걸 내려다 보려다..
나도...
나도 떨어져서...
죽었어... "
죽었어...
죽었어....
죽었어.....
지영이의 마지막 말이 메아리처럼 내 머릿속 여기저기를 떠돌고 있었다.
죽었어? 네가 죽었다구..?
지혜도 죽고... 너도 죽었다구..?
그게 무슨 말이야... 그게...
알수없는 감정에 내 눈엔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볼을 타고 한줄기 눈물이 흘러 내릴때 눈물 때문에 더욱 아른거리는
내 눈에 그 형체가 춤추듯 일렁거리며 다가 오는게 보였다.
난 피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다.
어찌된 일인지 전혀 내몸은 말을 듣질 않고 있었다.
그 형체가 내 눈앞까지 다가와 내 손목을 힘껏 잡는다.
그리고 날 끌고 밖으로 향하는 문쪽으로 간다.
등뒤에선 여전히 녀석들의 흐느낌과 울부짖음 소리가 들려온다.
내 시야에 들어오는 세상은 마치 슬로우 비디오를 보는듯 하다.
내 눈물에.. 내가 들고 있는 촛불의 흔들림에..
모든게 다 일렁거리고 있다.
문이 열리더니 그 순간 귀를 찢을듯한 바람 소리가 들여온다.
슬로우비디오 처럼 느리게 가던 세상이 갑자기 정상 속도로 돌아온다.
" 이봐!! 학생!! 괜찮아!!! "
산장밖이었다.
여전히 휘몰아치는 눈보라는 내 얼굴에 강한 자극을 주고 있었다.
난 고개를 돌려 내 손목을 잡고 있는 미지의 형체를 보았다.
50대로 보이는 각진 턱에 수염을 기른 남자였다.
" 학생!! 정신이 들어!!? "
강한 바람소리 때문에 그 남자는 바로 내옆에 서있는데도 소리 지르듯
말을 하고 있었다.
" 네... "
내 목소리는 강한 바람에 실려 어디론가 날아가 벼렸지만 그 남자는 내
얼굴을 보고 있었기에 뜻은 전달이 된것 같았다.
" 정말 괜찮아?!! "
난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좀전까지의 일은 도대체 무엇인가..
꿈이었나?
갑자기 머리속이 혼란 스러워 졌다.
" 아저씨!! 여기가 어디죠?!! "
" 여기는!!
여긴 화장터야!!! "
" 네..? "
" 정신이 좀 든것 같으니 일단 들어가자구!! "
그 남자가 내 손목을 이끌때서야 난 뒤를 돌아볼 수 있었다.
돌아선 내눈에 들어온건 좀전까지 친구들과 함께 있던 산장이 아니었다.
화장터 였다.
" 그런말이 있긴 하지.. 이 산에서 죽은 사람들이 이 화장터에 모여서
하룻밤을 지내면서 자기 죄를 되돌아보고 저 세상으로 간단말.. "
" .... "
난 말없이 내 손에 들려 있는 따뜻한 보리차만을 보고 있었다.
내가 앉아 있는 이곳은 그 문제의 계단을 올라 2층에 있는 관리자 숙소
였다.
" 내가 어제 술을 진탕 먹고 아침이 다되서야 잠이 들었거든..
낮에 무슨소릴 들은것 같았는데 잠결에 잘 못 들었을거라 생각하곤..
그럴만 한게 이곳엔 사람들이 오지 않거든..
그런데 저녁때가 되서야 일어났는데 아래층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거야.. 내려가보니 자네가 일층에 혼자 앉아 있더군..
아무도 없는데 자네 혼자 앉아서 주위에 누군가가 있는것처럼
잔뜩 찡그린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더라구..
내게 다가 오는데 눈에 촛점이 없어서 정신차리게 내가 밖으로
데리고 나간거야... "
그랬다. 난 이 화장터에 들어와 내내 혼자 있었던 것이다.
그럼 현규는.. 지혜와 지영이는...
그들은 무엇이었단 말인가...
다음날 등산로 옆 절벽에서 현규와 지혜, 지영이의 사체가 발견 되었다.
지영이와 지혜는 같은곳에서 발견 되었고, 현규는 우리가..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지나온 그 등산로 옆 절벽아래서 발견 되었다.
나와 함께 눈보라속을 걷던 현규는 발을 헛디뎌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
었고.. 난 그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럴수 밖에 없었다.
죽은 현규는 다시 내 뒤를 따랐으니까..
그리고..
그 화장터로 나를 이끌었으니까...
현규의 흐느낌이 사그라 들 무렵 내가 먼저 입을 열어 적막을 깼다.
" 너무 힘들어하지마 현규야..
다 니 잘못이라고만 생각하지마..
누나의 운명이었다고 생각해 현규야..
누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꺼야.. "
" 그래요, 현규오빠.. 너무 자책하지 말아요.. "
" 맞아요.. 그렇게 따지면 죄 짓지 않은 사람 하나도 없어요. "
내 말에 이어 지영이와 지혜가 위로의 말을 붙여갔다.
효과가 있었는지 현규는 머리를 들어 가볍게 웃어 보였다.
" 미안하다.. 내가 분위기를 망쳐 버렸네.. "
" 아니에요.. 이렇게 조용한 분위기도 나쁘진 않은걸요.. "
위로를 이어가는 지영이는 무릎을 세워 양팔로 다리를 감싸안고 있었다.
" 지영아 춥니? "
" 네.. 조금.. "
난 몸을 일으켜 벽난로로 다가가 굵은 장작 몇개를 던져 넣었다.
부지깽이로 몇번 들춰주자 사그라들던 불꽃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 이제 금방 따뜻해 질꺼야 "
" 고마워요 오빠.. "
" 뭘.. "
지영이의 고맙단 말에 내 기분은 한결 좋아졌다. 이런 내 마음속 변화를
눈치 챘는지 지혜가 한마디 던졌다.
" 오빠는 좋겠네~
오빨 바라보는 지영이 눈빛이 아까부터 수상하던데~ "
" 야~ 왜 그래... "
지영이는 지혜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쑥스러워 했다.
정말 내가 마음에 있는걸까...?
지금껏 내가 고백한적은 있었지만 날 좋아한다고 고백해오는 경우는
없었다. 설마 저렇게 이쁘고 귀여운 애가 나같은 놈을...
잠시 동안 행복한 상상에 빠질뻔 했던 난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 우리~ 게임같은거 말구 그냥 이야기 해요~ "
" 그래, 그러자.. "
지혜의 제안에 난 바로 동의를 했다.
왠지 이 산장에선 떠들고 노는것보단 조용히 이야길 나누는게 나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 지영이랑 지혜는 고향이 어디야? "
한결 밝아진 표정의 현규가 물었다.
" 음~ 난 서울에서 태어나 쭉 서울에서 자랐어요 "
" 전.. 강릉이 고향이에요.. 고등학교까지 그곳에서 지냈구..
지금도 부모님은 강릉에 계세요.. "
" 강릉... 거기 정말 이쁘지.. "
" 엥, 동준이 넌 가봤냐? "
" 오빠 강릉 와보셨어요? "
" 응.. 부대가 강원도 인제에 있어서..
휴가 복귀 할때 늘 강릉공항으로 갔었거든..
공항이 바다를 마주보고 있어서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할 땐
옆으로 누워서 유턴하듯 선회를 하는데
그때 왼쪽 창으론 바다만 보이고 오른쪽 창으론 하늘만 보이곤 했지..
뭐, 시내를 다녀보고 그러진 않았지만 하늘에서 본 모습도 이뻤구.. "
" 와우, 오빠네 집 부잣집인가 보네~ 비행기타고 다니구~ "
" 아냐, 군인은 상당히 디스카운트를 해주거든.. "
" 아항~ "
난 말을 하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현규의 표정을 살폈다.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계속해서 나쁜 기억들이 떠오르는듯 가끔씩 머리를
가로젖곤 했다.
불안했다. 녀석의 저런 모습을 본적이 없었기도 했고 이런 상황에 듬직한
버팀목이 되어줄 녀석이 흔들리는게 불안한 것이기도 했다.
그때였다..
지혜의 반응이 나타난건...
" 아... 이럴수가... 왜 그일이.. 그때의 일이.. 이제서야... "
좀 전까지만 해도 밝은 표정으로 분위기를 이끌던 지혜의 표정이 현규가
그랬듯 어떤 안좋은 기억에 의해 굳어가고 있었다.
" 지혜야... 왜 그래 너... "
지영이가 지혜의 팔을 붙잡으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내개 있어서 현규가 그렇듯, 지영이에겐 지혜가 버팀목 이었다.
" 이럴수가... 이럴수가...
내가 엄마 아빨 죽인거야... 내가... "
" 지혜야!! 그만둬!! "
난 서둘러서 지혜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어 봤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 난 그냥 장난처럼...
운전하고 있는 아빠눈을... 잠깐.. 아주 잠깐 가렸을 뿐이었는데.."
" 지혜야!! "
이미 지혜는 엎드려서 흐느끼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뭐야... 왜 번갈아 가면서 이러는거야..
내 머릿속은 복잡해져 버리고 있었다.
어느새 지영이가 지혜의 곁에 붙어 다독이고 있었다.
" 네 부모님이 돌아가신건 네가 아주 어렸을적 이었잖아..
네가 그랬을리도 없고 그랬다 하더라도 넌 너무 어렸기 때문에.. "
" 아냐!! "
지혜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에 난 깜짝놀라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지혜의 밝던 얼굴은 온데 간데 없었다. 잔뜩 일그러진 그녀의 얼굴엔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돼 있었다.
" 기억이 난단 말이야.. 네살때 일이지만.. 기억이 나버린다구..흐흑..
내가 우유를 먹다가.. 자동차 시트에 흘렸다구.. 아빠가 나한테
뭐라고 한걸... 내가 참지 못하구...흑... 내가...
정말 죽길 바랬단 말이야!! "
지혜의 마지막말..
정말 죽길 바랬단 말이야... 이말에 현규의 얼굴이 빠르게 일그러져 갔다.
현규도.. 현규도.. 누나가 죽길 바랬었단 말인가..
" 그만해 지혜야!! 그만 하라구!! "
표정이 일그러진건 현규뿐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지영이도 고통스러운듯
머리를 감싸쥐고 있었다.
지영이도 고통스러운 기억이 갑자기 떠오른듯 했다.
그때였다.
끼익....
이소리는...
끼익...
이 소리는...
끼익...
계단 소리였다.
이곳에선 보이지 않는 저 너머에.. 누군가가..아니 뭔가가..
계단을 밟고 있다...
끼익...
소리가 점점 커지는걸로 보아 2층에서 내려오고 있는것 같았다.
" 너희들도 들려? "
계단소리에 몸을 일으킨 나는 나머지 녀석들에게 물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고통스런 기억에 휩싸인채로 머리를 감싸쥐며
괴로워 하고 있었다.
끼익.....
끼익....
젠장!! 계단이 몇개 였었지?
이미 다 내려와 버린거 아니야?
끼익...
끼익....
.......
규칙적으로 들려오던 계단소리가 갑자기 멈춰졌다.
` 제기랄.. 다 내려온거야...
난 여전히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 녀석들을 내버려 둔채 벽난로로 다가가
쇠로된 부지깽이를 오른손에 집어 들었다.
그리곤 벽난로 위에 놓여있던 촛대를 왼손에 들곤 ㄱ자로 꺾인..
계단이 있는 그 공간으로 한발짝씩 발걸음을 올렸다.
` 이게 뭐야 도대체.. 뭐냐구!!
원래부터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던 산장이었지만.. 갑자기 모든 일이
꼬여버린듯 상황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각자의 머리속에 깊이 뭍혀있던.. 가장 잊고 싶어했던.. 아니 잊고 있었던
가장 끔찍했던 기억이, 죄책감이, 하필이면 같은 순간 다시 고개를 들어
모두를 괴롭히고 통제 불능의 상황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
게다가 갑자기 들려온 계단밟는 소리는 또 뭔가..
도대체 이 산장은 무엇인가..
저 소리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런생각을 하는 동안 난 꺾이는 지점에 다다라 있었다.
내가 들고 있는 흔들리는 촛불 때문에 계단이 있는 그곳은 마치 유령처럼
어둠과 빛이 얽혀 춤을 추는듯 보였다.
하지만..
보였다..
불빛은 계단앞에 서 있는 사람의 형태를 그 뒤에 있는 어둠과 구분짓게
해 주었다.
그 형태가 보이는 그 순간 내 몸은 강한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듯 몸 전체
에 강한 전율이 일어났다. 뒷걸음 치고 싶었지만 몸은 이미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 순간 등뒤로부터 지영이의 흐느낌 소리가 들려왔다.
" 오빠... 나... 나... "
` 뭐야.. 그런 말 하지말구 날 끌어 당겨줘..
내 바램과는 달리 움직이지 못하는 내 등뒤에서 지영이의 흐느낌 섞인
말은 계속 되었다.
" 나.... 지혜를... 지혜를...
죽였어!!.. "
...
...
지혜를 죽이다니..
지금 내 등뒤에서? 방금?
하지만 어감상.. 과거의 일을 고백하는듯 했다.
그렇다면 과거에 지혜란 친구가 있었던거야..?
난 내 앞에 서 있는 그 형체 때문에 여전히 뒤를 돌아 볼수가 없었다.
그 형체는 아직도 촛불이 또렷하게 밝혀줄 수 있는 사정권 안에 들어오지
않은채로 멈춰서 있었다.
내 눈은 끊임없이 어둠에 익숙해지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럴수록 조금씩 그 형체의 윤곽이 분명해 지고 있었다.
분명 사람의 모습이었다.
" 오빠... 난 지혜를 죽였어...
절벽에서... 살짝 밀었을 뿐인데... 눈에 미끄러져서..
지혜는 떨어져서... 머리가 깨져 죽고 말았어...흐흑..
난 그걸 내려다 보려다..
나도...
나도 떨어져서...
죽었어... "
죽었어...
죽었어....
죽었어.....
지영이의 마지막 말이 메아리처럼 내 머릿속 여기저기를 떠돌고 있었다.
죽었어? 네가 죽었다구..?
지혜도 죽고... 너도 죽었다구..?
그게 무슨 말이야... 그게...
알수없는 감정에 내 눈엔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볼을 타고 한줄기 눈물이 흘러 내릴때 눈물 때문에 더욱 아른거리는
내 눈에 그 형체가 춤추듯 일렁거리며 다가 오는게 보였다.
난 피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다.
어찌된 일인지 전혀 내몸은 말을 듣질 않고 있었다.
그 형체가 내 눈앞까지 다가와 내 손목을 힘껏 잡는다.
그리고 날 끌고 밖으로 향하는 문쪽으로 간다.
등뒤에선 여전히 녀석들의 흐느낌과 울부짖음 소리가 들려온다.
내 시야에 들어오는 세상은 마치 슬로우 비디오를 보는듯 하다.
내 눈물에.. 내가 들고 있는 촛불의 흔들림에..
모든게 다 일렁거리고 있다.
문이 열리더니 그 순간 귀를 찢을듯한 바람 소리가 들여온다.
슬로우비디오 처럼 느리게 가던 세상이 갑자기 정상 속도로 돌아온다.
" 이봐!! 학생!! 괜찮아!!! "
산장밖이었다.
여전히 휘몰아치는 눈보라는 내 얼굴에 강한 자극을 주고 있었다.
난 고개를 돌려 내 손목을 잡고 있는 미지의 형체를 보았다.
50대로 보이는 각진 턱에 수염을 기른 남자였다.
" 학생!! 정신이 들어!!? "
강한 바람소리 때문에 그 남자는 바로 내옆에 서있는데도 소리 지르듯
말을 하고 있었다.
" 네... "
내 목소리는 강한 바람에 실려 어디론가 날아가 벼렸지만 그 남자는 내
얼굴을 보고 있었기에 뜻은 전달이 된것 같았다.
" 정말 괜찮아?!! "
난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좀전까지의 일은 도대체 무엇인가..
꿈이었나?
갑자기 머리속이 혼란 스러워 졌다.
" 아저씨!! 여기가 어디죠?!! "
" 여기는!!
여긴 화장터야!!! "
" 네..? "
" 정신이 좀 든것 같으니 일단 들어가자구!! "
그 남자가 내 손목을 이끌때서야 난 뒤를 돌아볼 수 있었다.
돌아선 내눈에 들어온건 좀전까지 친구들과 함께 있던 산장이 아니었다.
화장터 였다.
" 그런말이 있긴 하지.. 이 산에서 죽은 사람들이 이 화장터에 모여서
하룻밤을 지내면서 자기 죄를 되돌아보고 저 세상으로 간단말.. "
" .... "
난 말없이 내 손에 들려 있는 따뜻한 보리차만을 보고 있었다.
내가 앉아 있는 이곳은 그 문제의 계단을 올라 2층에 있는 관리자 숙소
였다.
" 내가 어제 술을 진탕 먹고 아침이 다되서야 잠이 들었거든..
낮에 무슨소릴 들은것 같았는데 잠결에 잘 못 들었을거라 생각하곤..
그럴만 한게 이곳엔 사람들이 오지 않거든..
그런데 저녁때가 되서야 일어났는데 아래층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거야.. 내려가보니 자네가 일층에 혼자 앉아 있더군..
아무도 없는데 자네 혼자 앉아서 주위에 누군가가 있는것처럼
잔뜩 찡그린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더라구..
내게 다가 오는데 눈에 촛점이 없어서 정신차리게 내가 밖으로
데리고 나간거야... "
그랬다. 난 이 화장터에 들어와 내내 혼자 있었던 것이다.
그럼 현규는.. 지혜와 지영이는...
그들은 무엇이었단 말인가...
다음날 등산로 옆 절벽에서 현규와 지혜, 지영이의 사체가 발견 되었다.
지영이와 지혜는 같은곳에서 발견 되었고, 현규는 우리가..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지나온 그 등산로 옆 절벽아래서 발견 되었다.
나와 함께 눈보라속을 걷던 현규는 발을 헛디뎌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
었고.. 난 그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럴수 밖에 없었다.
죽은 현규는 다시 내 뒤를 따랐으니까..
그리고..
그 화장터로 나를 이끌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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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4
2006.08.13 17:16:33
꽤 무섭네;; 후;;;;;;;;;;;;;;;;;;;;; ㅇ _ㅇ우와;; 이 이야기 진짜 괜찮넴 = _+ 산장 속인줄 알앗더니 화장터 엿다니... 그리고 그 아저씨도 무서웟겟다; 혼자서 두리번 거리면서 중얼 거리고 잇는 학생이 ㅇ _ㅇ 앞에 잇엇으니까;;;
방랑자
2006.08.13 20:12:10
김학현
2006.08.14 13:32:25
아 슬프기도하구 무섭기도하구 웃기기도한 (?)
이야기내여
123
2006.08.14 17:50:57
근데 지혜는 왜 안죽엇지..? 지혜는 산을 오르다 떨어져 머리가 깨져 죽엇다는데.......
이유정
2006.08.15 02:20:06
쪼까..
2006.08.17 14:35:55
신창현
2006.08.19 11:24:55
재밌네여
당당한girl
2006.08.24 20:23:21
김다운
2006.10.22 14:34: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