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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325

아버지의 유훈집

조회 수 986 추천 수 0 2006.02.26 08:31:23


이십이년 전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던 어느 일요일이었다.

외출 후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가 책상 서랍에 넣어 둔 돈 중 5백원짜리 지폐 한 장이 없어

졌다고 했다. 그때 집에는 나 혼자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나를 의심하여 다짜고짜 내게

왜 돈을 훔쳤느냐고 물었다. 나는 단호하고 무서운 다그침에 질려서 결국 "돈을 훔쳐서 과

자를 사먹었다"는 거짓 자백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아버지 손에 이끌려 간 가게에서 내가 과자를 사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아버

지는 내가 거짓말을 했다며 더욱 화내셨다. 그 때문에 나는 그날 오후 내내 벌을 서야 했다.

결국 나의 결백은 그날 저녁 가족들이 모였을 때에야 밝혀졌다.

그러부터 팔 년 뒤 아버지는 병을 앓으시다가 돌아가셨는데 당신의 죽음을 미리 짐작하시고

가족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며 재산 분배 등을 정리한 '유훈집'을 남기셨다. 아버지가 돌아

가신 후 나는 그 유훈집을 읽다가 너무나 가슴 아픈 아버지의 글을 보게 되었다.



"철한이에게 너무 미안하구나. 어린 것이 그때 얼마나 아버지를 원망했을까. 어린 너의 가슴

에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것 같아 두고두고 마음에 거렸는데... 하지만 네가 미워서 그

랬겠느냐. 물런 성급하게 너를 의심한 것은 아버지 잘못이다만 행여 슬쩍 넘어가면 나쁜

버릇이생길까 걱정이 되어서... 미안하구나 아들아, 너도 이 다음에 크면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해 주겠지."



나는 눈물이 앞을 가려 더 이상 읽을 수 없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그때 일을 두고두고 가슴

아파하셨다는 아버지의 마음, 세 살 난 아들을 두고 있는 지금에야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식을 의심하고 오후 내내 벌을 주신 아버지는 그때 얼마나 괴로우셨을

까?


  


  


조회수 : 24424


글쓴이 : 오철한님 / 제주시 이도 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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