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여 쿠팡 방문하고 50 툴리 포인트 받기
2시간에 1회씩 획득 가능
글 수 325
< 1 >
"처음 뵙겠습니다. 이 시대 마지막 로맨티스트입니다."
친구가 그러더군요. 자기 아는 선배중에 참 신기한 사람이 있다고.
전 그냥 호기심에 한번 보고싶다고 했는데, 그가 제게 처음 한 말이 바로
"마지막 로맨티스트"란 말이었어요.
정말 이상한 사람도 다 있다고 생각했죠.
다짜고짜 로맨티스트란...아무래도 왕자병에 단단히 걸려 있던지,
아니면 자기멋에 사는 시덥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참 아름답지 않습니까? 저 별들.. 저 별빛은 아마 10만년, 아니 더 이전에
내려온 빛일지도 모르는데.. 그 빛을 보고 있는 우리는 그만큼의 시간을 보고
있는 셈이 될테니까요.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대개 아름답게 마련이죠."
저건 또 무슨 책에서 읽은 대사인지. 전 시큰둥하게 대답했어요.
"아..네. 뭐.....그렇네요."
"당신도 아름답습니다. 저 별빛보다 더."
뜨아...
그 말을 들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어떻게 이런 느끼한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어요. 솔직히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그것도 처음 본 사람한테.
하지만 나중에 알았어요. 그의 말이 진심이라는 걸.
< 2 >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게 연락이 왔어요. 다시 만나자구요.
그 말도 얼마나 화려하게 말을 하던지..
전 그렇게 끌리지는 않았지만, 밥을 먹고,
잠시 길을 거닐며 그는 제게 이야기 했어요.
"진정한 로맨티스트는 함부로 자신의 로맨스를 만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이라면 제 로맨스를 받아주실 수 있을 것 같네요.
지금 제 귓가를 스치고 간 바람도 그러던걸요.
이 여자, 꼭 잡으라고."
아무래도..솔직히.. 이 남자 제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이런 사람 직접 보셨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느끼 하겠어요.
"저기요.. 원래 말을 그렇게 하세요?"
"네. 왜냐하면 전 로맨티스트거든요."
"다른 사람들이..뭐라고 안그래요?"
"뭐라고 그래도 상관 없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만 괜찮다면."
으..영화에서 이런 대사 하는 거 보면 참 멋지고 그랬는데.
실제로 들으니까 진짜루 닭살 쫘악~~이었어요.
한참을 그러고 가다가, 그가 제게 묻더군요.
어떤 영화를 보고 싶냐구..그래서 그냥 생각나는대로 이야기 했더니,
씨익 웃으면서 극장으로 데리고 가더군요. 전 같이 가면서 걱정이 됐어요.
그 영화가 하도 인기라서 예매를 하지 않으면 보기 힘들다고 친구가 그랬거든요.
하지만 그는 제가 보고 싶은 영화를 어떻게 알았는지 미리 예매를 해놨더라구요.
자리도 참 좋았어요. 극장이 좁긴 했지만 앞자리가 비어 있어서 머리 때문에
화면이 안보이구 그런 일은 없었거든요.
그렇게 영화를 보다가 그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그가 벗어 놓은 옷이
떨어져서 주워올리다가 우연히 주머니를 보게 되었는데, 무가 잔뜩 들어있더군요.
호기심에 살짝 봤는데..
세상에. 그날 개봉된 영화가 종류별로 전부 예매되어 있었어요.
그것도 4장씩.
우리 두사람 자리하고 앞자리까지 전부 예매를 해 놓은거였어요.
나중에 집에 오면서 그에게 물어봤어요.
어떻게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예매할 수 있었냐구. 알면서 물어본 건데..
그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운이 좋았습니다. 다행스럽게도요.."
그 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사람 진짜 로맨티스트일지도 모르겠다고.
< 3 >
그 날은 제가 너무 바빠서 오랜만에 만난 날이었어요.
좀 어색한 느낌도 들어서 별로 말도 안하구 그냥 밥이나 같이 먹고 헤어지게
되었는데, 그가 그러는거예요.
"지금 뭐가 제일 하고 싶어요?"
"네? 저..글쎄요..."
"아무거나 대답해 보세요."
"그냥 생각이 나는 건..놀이기구를 타고 싶긴 한데..
너무 늦어서 못가겠죠. 11시 다 되어가니까."
"잠깐만 실례할께요."
"네? 어...어머!"
그는 갑자기 저를 번쩍 안더니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어요.
모든 사람들이 저희를 쳐다보았고, 저는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어요.
그는 힘이 드는지 씩씩거리면서도 계속 뛰었어요.
"저기..이제 됐으니까 내려주세요~"
"재미 있으세요?"
"네, 고마워도. 그러니까..내려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는 땀이 송글송글 맺힌 얼굴로 저를 내려주고는 씨익 웃었어요.
갑자기 그러는 법이 어디 있냐구 핀잔이라도 줄려고 했는데,
그의 얼굴을 보니 차마 그 말도 못하겠던걸요.
그리고 휴지를 꺼내 그의 얼굴을 닦아주며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이 사람을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말이에요.
< 4 >
제 생일날, 처음으로 약속시간에 늦은 그는 얼굴이 말이 아니었어요.
보기 좋던 그의 뺨이 움푹 들어가있었고, 손은 상처투성이었어요.
"어머, 왜..왜 이렇게 됐어요?"
"좀..그럴 일이 있었습니다. 괜찮으면 어디 좀 같이 가실까요?"
"네?..네."
그러더니, 그는 저의 손을 잡고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가는거예요.
전 이해할 수 없었죠. 왜 이 사람이 이러는지..
워낙 다른 사람하고 다르기는 했지만, 그 날은 정말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리고 차를 타고 한참을 가서 내린 곳은, 강원도에 있는 이름 모를
어느 산이었어요.
전 아무 말 없이 제 손을 잡고 앞으로 가는 그의 등을 보며 무슨 말을 하고
싶었지만, 왠지 그냥 따라 가야 할 것 같아 힘든 걸음으로 그의 뒤를 쫓아갔어요.
날은 벌써 어두워져서 아무것도 안보이는데, 그는 많이 와 본 길인듯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어요. 그리고 고개를 돌아 산 중턱에 닿자, 그는 제게 이야기했어요.
"이제 다 왔어요."
"여긴 왜 온거에요?"
"그 이유는..내일 아침 해가 뜨면 알 수 있을 겁니다."
"어머. 잠깐요. 그럼 오늘 여기서 밤을 새야 되요?"
"네."
"저..안되겠어요. 집에 가야 해요."
"절 믿어주시고..여기 앉아서 아침 해를 바라봐 주실 수 없으세요?
제발...부탁드릴께요."
솔직히..로맨티스트인 이 사람이 제 생일에 무얼 선물할지 내심 기대했었는데,
이건 실망도 이만저만 아니었어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산 속에서 같이 밤을 새자니. 하지만 차도 끊겼고..
설마 이 사람이 나쁜 짓 할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고..어쩔 수 있나요.
밤을 새는 수 밖에.
그리고 바위 위에 오도카니 앉아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전 그의 어깨를 베고 잠이 들었어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새가 지저귀는 소리와 함께 그가 제 귀에
살며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어요.
"시간 됐어요. 이제 일어나서 앞을 보세요."
전 부시시 눈을 뜨고 앞을 보았어요. 그리고 전 입을 다물 수 없었어요.
아침 해가 은은히 비추는 산 중턱에는, 전부 장미로 가득했어요.
눈앞에 보이는 건 모두 장미. 그것도 빨갛게 핀 장미가 아침 햇빛을 담은 이슬을
머금고 있는 모습이라는 건.. 상상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보다도 더
아름다운 모습이었어요.
"세..세상에....이 장미들이 어떻게 여기에..."
"우리나라에 단 한 곳뿐인 야생장미 집단서식처에요.
전에 무슨 책에선가 본 기억이 있어서..당신에게 꼭 보여주고 싶어서 데리고
왔는데..꺾여진 100송이 장미보다 피어있는 1000송이 장미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참, 벌써 하루 늦어버렸지만, 생일 축하해요."
여길 찾으려고 이 근처 산을 다 헤메느라고 얼굴이랑 손이랑 엉망이 되어버렸다며
쑥스럽게 웃는 그를 보며..이젠 그의 말이 느끼하지 않았어요.
그냥 좋았어요. 그리고 저도 느끼한 말 한마디 했답니다.
"어쩔 수 없이 사랑하게 만들어 버리는군요, 당신이란 사람은.."
< 5 >
영원한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이고 슬픈 사랑만이 영원할 수 있다면서..
이제야 진정한 로맨티스트가 될 수 있겠다고 그는 파리해진 얼굴로 이야기했어요.
50년을 사랑해 주었으면서도 더 사랑해 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먼저 죽게 되어 미안하다며 주름진 제 손을 쓰다듬으며 미안하다고...
오랜 세월 함께 해주어 고맙다는 말을 하며
당신보다 먼저 그 곳에 가서 장미밭을 만들고 있을테니
나중에....천천히 오라며..
그는 눈을 감았어요..
까맣게 검버섯이 피어있는 그의 얼굴에서
그 날 아침, 장미보다 더 아름답던 당신의 얼굴을 떠올리며...
사랑합니다.
나의
마지막 로맨티스트.
안녕~
조회수 : 19952
글쓴이 : 정진화 님
관련 URL :
기타 사항 : 정진화(bond76@hanmail.net)님이 유머랜드에 올린 글을 퍼옴
"처음 뵙겠습니다. 이 시대 마지막 로맨티스트입니다."
친구가 그러더군요. 자기 아는 선배중에 참 신기한 사람이 있다고.
전 그냥 호기심에 한번 보고싶다고 했는데, 그가 제게 처음 한 말이 바로
"마지막 로맨티스트"란 말이었어요.
정말 이상한 사람도 다 있다고 생각했죠.
다짜고짜 로맨티스트란...아무래도 왕자병에 단단히 걸려 있던지,
아니면 자기멋에 사는 시덥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참 아름답지 않습니까? 저 별들.. 저 별빛은 아마 10만년, 아니 더 이전에
내려온 빛일지도 모르는데.. 그 빛을 보고 있는 우리는 그만큼의 시간을 보고
있는 셈이 될테니까요.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대개 아름답게 마련이죠."
저건 또 무슨 책에서 읽은 대사인지. 전 시큰둥하게 대답했어요.
"아..네. 뭐.....그렇네요."
"당신도 아름답습니다. 저 별빛보다 더."
뜨아...
그 말을 들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어떻게 이런 느끼한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어요. 솔직히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그것도 처음 본 사람한테.
하지만 나중에 알았어요. 그의 말이 진심이라는 걸.
< 2 >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게 연락이 왔어요. 다시 만나자구요.
그 말도 얼마나 화려하게 말을 하던지..
전 그렇게 끌리지는 않았지만, 밥을 먹고,
잠시 길을 거닐며 그는 제게 이야기 했어요.
"진정한 로맨티스트는 함부로 자신의 로맨스를 만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이라면 제 로맨스를 받아주실 수 있을 것 같네요.
지금 제 귓가를 스치고 간 바람도 그러던걸요.
이 여자, 꼭 잡으라고."
아무래도..솔직히.. 이 남자 제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이런 사람 직접 보셨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느끼 하겠어요.
"저기요.. 원래 말을 그렇게 하세요?"
"네. 왜냐하면 전 로맨티스트거든요."
"다른 사람들이..뭐라고 안그래요?"
"뭐라고 그래도 상관 없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만 괜찮다면."
으..영화에서 이런 대사 하는 거 보면 참 멋지고 그랬는데.
실제로 들으니까 진짜루 닭살 쫘악~~이었어요.
한참을 그러고 가다가, 그가 제게 묻더군요.
어떤 영화를 보고 싶냐구..그래서 그냥 생각나는대로 이야기 했더니,
씨익 웃으면서 극장으로 데리고 가더군요. 전 같이 가면서 걱정이 됐어요.
그 영화가 하도 인기라서 예매를 하지 않으면 보기 힘들다고 친구가 그랬거든요.
하지만 그는 제가 보고 싶은 영화를 어떻게 알았는지 미리 예매를 해놨더라구요.
자리도 참 좋았어요. 극장이 좁긴 했지만 앞자리가 비어 있어서 머리 때문에
화면이 안보이구 그런 일은 없었거든요.
그렇게 영화를 보다가 그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그가 벗어 놓은 옷이
떨어져서 주워올리다가 우연히 주머니를 보게 되었는데, 무가 잔뜩 들어있더군요.
호기심에 살짝 봤는데..
세상에. 그날 개봉된 영화가 종류별로 전부 예매되어 있었어요.
그것도 4장씩.
우리 두사람 자리하고 앞자리까지 전부 예매를 해 놓은거였어요.
나중에 집에 오면서 그에게 물어봤어요.
어떻게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예매할 수 있었냐구. 알면서 물어본 건데..
그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운이 좋았습니다. 다행스럽게도요.."
그 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사람 진짜 로맨티스트일지도 모르겠다고.
< 3 >
그 날은 제가 너무 바빠서 오랜만에 만난 날이었어요.
좀 어색한 느낌도 들어서 별로 말도 안하구 그냥 밥이나 같이 먹고 헤어지게
되었는데, 그가 그러는거예요.
"지금 뭐가 제일 하고 싶어요?"
"네? 저..글쎄요..."
"아무거나 대답해 보세요."
"그냥 생각이 나는 건..놀이기구를 타고 싶긴 한데..
너무 늦어서 못가겠죠. 11시 다 되어가니까."
"잠깐만 실례할께요."
"네? 어...어머!"
그는 갑자기 저를 번쩍 안더니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어요.
모든 사람들이 저희를 쳐다보았고, 저는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어요.
그는 힘이 드는지 씩씩거리면서도 계속 뛰었어요.
"저기..이제 됐으니까 내려주세요~"
"재미 있으세요?"
"네, 고마워도. 그러니까..내려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는 땀이 송글송글 맺힌 얼굴로 저를 내려주고는 씨익 웃었어요.
갑자기 그러는 법이 어디 있냐구 핀잔이라도 줄려고 했는데,
그의 얼굴을 보니 차마 그 말도 못하겠던걸요.
그리고 휴지를 꺼내 그의 얼굴을 닦아주며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이 사람을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말이에요.
< 4 >
제 생일날, 처음으로 약속시간에 늦은 그는 얼굴이 말이 아니었어요.
보기 좋던 그의 뺨이 움푹 들어가있었고, 손은 상처투성이었어요.
"어머, 왜..왜 이렇게 됐어요?"
"좀..그럴 일이 있었습니다. 괜찮으면 어디 좀 같이 가실까요?"
"네?..네."
그러더니, 그는 저의 손을 잡고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가는거예요.
전 이해할 수 없었죠. 왜 이 사람이 이러는지..
워낙 다른 사람하고 다르기는 했지만, 그 날은 정말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리고 차를 타고 한참을 가서 내린 곳은, 강원도에 있는 이름 모를
어느 산이었어요.
전 아무 말 없이 제 손을 잡고 앞으로 가는 그의 등을 보며 무슨 말을 하고
싶었지만, 왠지 그냥 따라 가야 할 것 같아 힘든 걸음으로 그의 뒤를 쫓아갔어요.
날은 벌써 어두워져서 아무것도 안보이는데, 그는 많이 와 본 길인듯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어요. 그리고 고개를 돌아 산 중턱에 닿자, 그는 제게 이야기했어요.
"이제 다 왔어요."
"여긴 왜 온거에요?"
"그 이유는..내일 아침 해가 뜨면 알 수 있을 겁니다."
"어머. 잠깐요. 그럼 오늘 여기서 밤을 새야 되요?"
"네."
"저..안되겠어요. 집에 가야 해요."
"절 믿어주시고..여기 앉아서 아침 해를 바라봐 주실 수 없으세요?
제발...부탁드릴께요."
솔직히..로맨티스트인 이 사람이 제 생일에 무얼 선물할지 내심 기대했었는데,
이건 실망도 이만저만 아니었어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산 속에서 같이 밤을 새자니. 하지만 차도 끊겼고..
설마 이 사람이 나쁜 짓 할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고..어쩔 수 있나요.
밤을 새는 수 밖에.
그리고 바위 위에 오도카니 앉아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전 그의 어깨를 베고 잠이 들었어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새가 지저귀는 소리와 함께 그가 제 귀에
살며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어요.
"시간 됐어요. 이제 일어나서 앞을 보세요."
전 부시시 눈을 뜨고 앞을 보았어요. 그리고 전 입을 다물 수 없었어요.
아침 해가 은은히 비추는 산 중턱에는, 전부 장미로 가득했어요.
눈앞에 보이는 건 모두 장미. 그것도 빨갛게 핀 장미가 아침 햇빛을 담은 이슬을
머금고 있는 모습이라는 건.. 상상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보다도 더
아름다운 모습이었어요.
"세..세상에....이 장미들이 어떻게 여기에..."
"우리나라에 단 한 곳뿐인 야생장미 집단서식처에요.
전에 무슨 책에선가 본 기억이 있어서..당신에게 꼭 보여주고 싶어서 데리고
왔는데..꺾여진 100송이 장미보다 피어있는 1000송이 장미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참, 벌써 하루 늦어버렸지만, 생일 축하해요."
여길 찾으려고 이 근처 산을 다 헤메느라고 얼굴이랑 손이랑 엉망이 되어버렸다며
쑥스럽게 웃는 그를 보며..이젠 그의 말이 느끼하지 않았어요.
그냥 좋았어요. 그리고 저도 느끼한 말 한마디 했답니다.
"어쩔 수 없이 사랑하게 만들어 버리는군요, 당신이란 사람은.."
< 5 >
영원한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이고 슬픈 사랑만이 영원할 수 있다면서..
이제야 진정한 로맨티스트가 될 수 있겠다고 그는 파리해진 얼굴로 이야기했어요.
50년을 사랑해 주었으면서도 더 사랑해 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먼저 죽게 되어 미안하다며 주름진 제 손을 쓰다듬으며 미안하다고...
오랜 세월 함께 해주어 고맙다는 말을 하며
당신보다 먼저 그 곳에 가서 장미밭을 만들고 있을테니
나중에....천천히 오라며..
그는 눈을 감았어요..
까맣게 검버섯이 피어있는 그의 얼굴에서
그 날 아침, 장미보다 더 아름답던 당신의 얼굴을 떠올리며...
사랑합니다.
나의
마지막 로맨티스트.
안녕~
조회수 : 19952
글쓴이 : 정진화 님
관련 URL :
기타 사항 : 정진화(bond76@hanmail.net)님이 유머랜드에 올린 글을 퍼옴
이 게시물에는 아직 작성된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의 주인공이 되어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