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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325

만약 당신이라면.....

조회 수 1057 추천 수 0 2006.02.28 11:10:51


글쓴이 :


1

우린 무슨 소설에나 나오는 것처럼 어릴때부터 한동네 옆집에서 자라서

서로 알거 다 알고, 그러다가 어느새 감정이 싹트고 그런 사이는 아니랍

니다.처음 만난 것도 고등학교 때였어요. 제 친구가 잠실여고 축제하니까

한번 같이 가 보자구 그래서 그냥 따라갔던건데 거기서 제 친구의 국민학교

동창들을 만난거죠.



그 뒤로 제친구, 저, 그리고 그애는 가끔 만났어요. 일요일에 운동하러

간다고 나가서는 셋이 모여 없는 돈에 피자도 사 먹고, 2차로 떡볶이도

먹고, 방학때면 롯데월드 어드벤쳐에도 놀러가고 그랬었죠. 어드벤쳐

천장에 그 뭐드라...무슨 풍선 여행이라고 있죠? 그걸 타고 계속 가다

보면 딱 한군데 성의 깃발을 손으로 만질 수가 있어요. 그래서 여기 올

때마다 그걸 쳐서 돌려놓곤 했는데 우리 밖에 이걸 아는 사람이 없던지

반년이 넘게 지나서 가봐도 그 방향 그대로 있더군요.





2

그렇게 우린 놀았어요. 항상 셋이서요. 글쎄...제 친구가 저 모르게 둘이

만난건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제가 볼때는 항상 셋이 어울려 놀았어요.

마치 둘만 만나면 무슨 일이라도 생길 것 처럼.



아. 전화는 물론 둘이 했죠. 셋이 할 수는 없으니까. 서로 전화로 얘기할

때는 왜 그렇게 시간이 잘 가는지... 그런데 얘기 내용을 살펴보면 정말

요맨큼도 도움 안되는 말들을 그냥 주절주절 늘어놓는거였죠.



" 응, 근데?"



" 그래서 죽겠다구. 여드름을 짰으면 안에 하얀 막대기 같은 기름덩어리가

나와야 되는데 그건 안나오고 막 덧나서, 으 아파 죽겠네."



" 짜긴 왜 짜니? 그냥 내비두면 저절로 났는걸."



" 아이구, 넌 여드름 안났으니까 하는 소리지 이게 얼마나 신경쓰이는데.

공부 할때도 손으로 계속 건드리게 되구, 그러다가 울퉁 불퉁한게 느껴지면

손톱으로 긁어내다가 피부 벗겨저서 또 곪구, 정말 장난 아니게 신경쓰여."



" 약 써보지 그래? 다그린이나 그런거."



" 왜 안써봤겠니. 뭐드라..하간 뭐 이상한 파스같이 생긴 미국제 약까지

안써본거 없이 다 써봤는데, 그럼 좀 수그러 지는 듯 하더니 결국 그놈이

그 놈이야."



" 그럼 담에 만날때 뭐 침이나 볼펜 갖구와. 내가 짜 줄께"



" 하이구, 널 어떻게 믿고 내 여드름을 맡기냐?"



" 이래뵈도 내가 손이 얼마나 섬세한데!"



" 섬세? 뽀호호~~"



" 어, 웃었어~! 너 담에 보자~! 내가 식용유 가저가서 너 얼굴에 발라

줄꺼다~!"



" 어짜피 기름 투성이인거, 바다에 양말 빤다고 냄새 나겠어?"



" 네 양말이면 모르지."



" 어~! 어쭈구리~~ 한번 해보겠다는 것이여~!"



"..."



.....



그렇게 .... 우린 놀았어요.







3

그리고 대학에 왔죠. 다행이도 전부 대학에 잘 왔어요. 그렇게 놀았는데도

전부 버젓이 붙은거 보면 지금도 신기해요.



그런데 대학 오니까 서로 만날 기회가 별로 없더라구요. 그냥 가끔 전화나

하고 그랬죠. 서로 동아리다, 무슨 모임이다 그래서 하두 바빠서요.

그러던 어느날, 입학한 지 1달도 넘어서야 겨우 셋이 시간이 맞아서 만나게

되었어요. 저 신림동 쪼이라는 커피숍에서요.



좀 시간에 늦어서 헉헉거리며 약속장소에 나갔는데 아무도 안온거에요.

참내..이 녀석들 두고보자. 10분당 1000원씩 내라구 그래야지. 막 그렇게

씩씩거리고 있는데,



" 이렇게 늦게오면 어떡하니?"



뒤를 돌아다보니...세상에. 역시 여자는 대학오면 달라진다고 그러더니

1달만에 어떻게 이렇게 바뀔수가. 하긴 옛날에도 좀 이쁘게 생겨서 가끔

따라다니는 남자애들도 있긴 했지만 화장을 약간 한 정도인데... 못알아볼

정도라니..



전 한동안 말을 못하고 우물쭈물 거리고 있었고, 얘도 제가 말을 잘 못하

니까 어색해서 그냥 둘이 아무말도 안하고 서 있었어요. 그러다가 삐삐가

왔죠. 제 친구놈이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오늘 도저히 못나가겠다구.





4

우린 뭘 할까 망설이다가 고등학교때는 비싸서 못본 연극을 보기로 했어요.

그래서 대학로로 가서 "넌센스"를 보기로 했죠.



전 몰랐는데 이 연극이 인기가 좋더라구요. 그래서 서로 어깨가 딱 붙을

정도로 좁게 좁게 앉아서 연극을 봤는데...전 연극이 눈에 들어오질 않았

답니다. 이제껏 많이 만났어도 이런일은 없었는데. 셋이 아니고 둘만

만나서 그런건지... 어깨에 와 닿은 그애의 감촉이며, 가끔 부딛히는

신발의 떨림이며, 웃다가 머리가 흔들리며 풍겨오는 샴푸냄새며, 옅은

화장에서 풍기는 화장품 특유의 냄새 하며.... 전 웃지도 못하고 그냥

땀을 뻘뻘 흘리며 앉아있기만 했어요.



집에 갈 때쯤 되니까 이제야 어느정도 진정이 되더군요. 그래서 전처럼은

아니지만 그나마 좀 편하게 얘기를 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전에 얘가 말했죠.



" 참 좋다. 이렇게 서로 대학와서 만나니까. 난 너희들 만날때가 제일

편해. 고등학교 때부터 쭉 알던 친구들이니까. 너두 그렇지?"



너두 그렇지? 라는 질문에...전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어요. 나두

그렇다고 대답하면 그건 우린 단지 친구일 뿐이라는 소리가 되는거고,

그런데 전 단순한 친구 관계만을 얘한테 원했던게 아닌가 봅니다. 이제

생각해보니 그래요.





5

그 이후로는 제가 얘한테 연락한 적은 한번도 없었어요. 제 친구하구

얘하구 만나니까 나오라는 연락도 그냥 사정이 있어서 못간다고 그러구요.

그냥 속으로만 앓았어요. 다시 만나면 정말..그냥 친구처럼 대할 자신이

없었거든요.



그러다가 들리는 말이 제 친구랑 얘랑 사귄다는 소문이었어요. 전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 뒤에서 뭐가 뜨거운게 쭉 하고 올라오는 느낌이었지만 아무

한테도 말할수 없었답니다.



그 이후로는 그 애뿐이 아니고 제 친구를 보기도 무척이나 거북했어요. 제

친구가 가끔 그 애 얘기를 할때면 전 왠지 속에서 뭐가 부글부글 끓는 느낌

이어서 그냥 듣고 있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얼른 화제를 바꾸고 그랬죠.

물론 바꾼 화제도 결국 돌고돌면 얘 얘기로 가곤 했지만.





6

그리고 전 얘네들을 피했어요. 그 애들도 제가 연락을 안하고 자꾸 피하니까

언제부턴가 연락을 안하더군요. 그리고 1년이 지났어요.





7

오늘 전 얘네들, 아니 그애와 제 친구의 약혼식장에 갔다왔답니다.

도저히...웃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그냥 좀 피곤하다고 고개를

숙인채로 있었죠. 그 애는 정말 이쁘더군요. 아니..이젠 이쁘다는

말보다는 아름답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네요.



오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졌어요. 그냥 옛날에 놀던

생각들, 그날 연극보면서 느꼈던 미묘한 감정들, 웃는 모습들, 그런것들이

눈 앞에서 눈물처럼 맴돌아서...그 눈물을 떨어뜨리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잊어야죠. 이젠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를 위해서. 잊어야죠. 잊어야죠.

잊어야죠. 잊어야..... . .





8

이걸로 내용은 끝입니다. 이 내용과 비슷한 일을 겪은 분도 계시겠고,

아니면 전혀 겪어보지 않으신 분도 계실꺼에요. 하지만..만약 당신에게

이런 일이 생긴다면 어디서부터 새로 이야기를 쓰실 수 있으실지....

생각해 보실래요?








  


  


조회수 : 33974


글쓴이 : 마아가린(1999년 4월 3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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