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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325

천사를 본 적 있나요?

조회 수 1471 추천 수 0 2006.03.14 02:45:46




  
  



  
  
천사를 본 적 있나요?


  


  


내 룸메이트는 조금은 유난스러운 면이 있다.

오늘도 그의 유난스러운 성격 때문에 우리는 방을 온통 뒤집어야 했다.

그는 유난히 청결을 강조하는 편이다.

물론 나도 내 나름대로 항상 깨끗한 환경을 유지하려 하지만 그의 성격을

맞추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무튼 오늘도 그랬다.



청소가 끝나갈 무렵, 난 그의 사진첩을 발견했고, 그의 허락하에 그의 추억을 볼

수 있었다. 그의 사진첩은 온통 금발 머리의 한 아가씨 사진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의 여자 친구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금발 머리, 파란 눈...

그는 그녀를 천사라고 내게 소개해 주었다.

그러나 내게 있어서 그녀의 모습은 단지 예쁜 서양 인형의 모습일 뿐 결코 천사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래, 천사는 저런 모습이 아니다. 적어도 내게 있어의

천사는...



내가 "나의 천사"를 처음 만난건 지금으로부터 5년전의 일이었다. 1990년의 봄.

그때 난 어느 정도 지루해진 대학 생활에 뭔가 활기가 될 만한 일을 찾아

헤메이고 있었다.

대학 3학년 학생에게는 이미 미팅이나 축재 따위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변변히 내세울 여자 친구 하나 없는 내겐... 난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전철문에 기대어 뭔가 생각하고 있었다. 한참 뭔가에 깊이 빠져들때 난 천사의

음성을 들었다.



"저... 내려야 하는데 조금만 비켜 주시겠어요?"



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 난 내 평생 그토록 눈부신 모습을 보긴 처음이었다.

까맣고 긴 머리에 하얀 블라우스와 스커트... 날개만 없었다 뿐이지 그 모습은

천사의 모습 바로 그 모습 자체였다.



그날 이후 난 등하교시 그녀를 찾아보려고 애썼지만 며칠이 지나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녀에 대한 나의 기억이 거의 사라져 가던 무렵 난 다시 그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웬지 조금은 꺼벙해 보이는, 그러나 내게는 한없는 부러움의

대상으로 느껴지던 어떤 남학생과 함께였다.

그러나 난 그들 사이가 별로 대단한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 챌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눈길은 그 남학생에게 한번도 주어지지 않았고, 오로지 전철

바닥만을 주시하고 있다는 걸 난 알아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난 내 성격과 달리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지만 그들에게 다가갔고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어... 오랜만이네. 요즘은 어떠니? 야... 오랜만인데 어디 가서 커피나 한잔하자."



본래 수줍음을 많이 타는 내가 그날은 어떻게 그렇게 엉뚱한 행동을 했는지...

나는 지금도 그때의 행동이 사실 이해가 안 간다.

그녀는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그 남학생에게 말했다.



"저어.. 오랜만에 아는 분을 만나서... 전 이만 내려야겠어요. 그럼..."



놀랍게도 그녀는 그 남학생에게 고개를 꾸벅하더니 다음 역에서 내렸고, 나는 너무나 놀라운 반응에 나도

모르게 그녀를 따라 내렸다. 을지로...



그녀와 내게 처음으로 걷게 된 거리는 그때는 내게 조금은 낯설은 을지로였다.

난 그녀가 왜 나에게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아무튼 우린 그렇게 만났다. 나중에 그녀 말에

의하면 그 남학생은 그녀를 한달 넘게 따라다니던 사람이었고, 그녀는 그를 따돌리기 위해서 내게 그런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내가 만일 나쁜 사람이었다면 어떡하려고 그랬냐는 나의 질문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었다.



"눈이... 맑아 보였었어, 그래서 믿을 수 있었어."



아무튼 이와 같은 대답은 그녀와 많이 친해진 몇 개월 뒤에 들은 이야기이니까 사실 그 당시의 그녀의 마음은

나도 알 길이 없다.



우리는 그날 몇 가지 일상적인 대화를 하고 헤어졌다. 그녀와 헤어질 때 난 버스 정류장 근처의 노점에서 장미

10송이를 사서 사양하는 그녀에게 억지로 쥐어 주었다.

언젠가 책에서 본 남자 주인공의 멋진 대사가 입에서 맴돌았지만 아무말도 못한 채...

그리고 난 그녀를 몇 달 동안 만나지 못했었다. 왜 그날 내가 그녀에게 다음 데이트 신청을 하지 못했었는지는

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단지 지금 생각해보건대 나는 그런 놀라운 경험에는 익숙하지 않았고, 또 무엇보다도 그녀에게서 내가

근접하기에는 왠지 어려울 듯한 신비감이 너무나 많이 느껴졌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후 난 그녀를 몇 달 동안 만날 수가 없었다.

그토록 전철을 맴돌았지만… 난 그녀를 만나지 못할까봐 절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난 쉽게 포기하지 못했다. 그 갸름한 얼굴과 작고 예쁜 코, 조그마하면서도 도톰하게 느껴지던 그녀의

입술...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녀는 아이처럼 작은 손과 작은 발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녀의 취향까지도 그러했다. 그녀처럼 작고 예쁜 물건만 보면 그녀의 눈은

반짝 반짝 빛나곤 했었으니까...)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게서 떠나지 않는건 그녀의 반짝이던 동그란 눈이었다.

그녀는 비록 서양인형처럼 이목구비가 뚜렷하지는 않았지만 가냘프면서도 어딘지

고상한 느낌을 주는 그런... 그래, 내게는 신비로움까지 주는 "나의 천사"였다.



본래 우리 집은 서울과는 멀리 떨어진 지방 도시였다. 물론 그래도 도청

소재지였기 때문에, 난 고등학교때까지는 우리 도시가 서울에 비해 그토록 시골스럽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내가 처음 대학 시험을 보러 서울에 왔을 때 난 너무나 커다란 감명(?)을

받았었고, 나는 다행히 그래도 사람들이 제법 알아주는 대학에 다닐 수 있게

되었으며 나의 고등학교 시절 그토록 타보고 싶었던 서울 지하철로 통학을 할 수 있었다.

난 서울에 아무런 연고지도 없었었다. 난 대학 시절을 서울 외곽 지역의

하숙집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그때 나랑 같은 방을 사용하던 형이 내게 많은 도음을 주고

있었다.

그는 그때 복학생이었기 때문에 나보다 3살이나 많았었고,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재주가 있었었다. 나의 천사에 대한 그리움에 내가 힘들어 할 때도 그 형이 많은

위로와 상담(?)을 해주곤 했었었다. 그러던 어느 날, 2학기 개강한지 얼마안되서

난 나의 천사를 또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그래. 그건 우연이 아니었다. 넓은 서울

바닥에서 그토록 많은 우연을 없을 것이다. 아무튼 나의 천사는 놀라움과 기쁨이

섞인 표정으로 나를 보았고, 그 날 이후로 우린 자주 만날 수 있었다.



나는 평소 이상형의 여인상을 가지고 있었었다. 그런데, 나의 천사는 나의 이상형을

능가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나의 천사를 제외하고 나의 이상형에 부합하는 여인을

만나 본 적이 한번도 없다. 나의 천사를 만나면 어떤 대화도 필요 없었다.

우린 눈으로도 서로의 감정을 눈치챌 만큼 서로에게 몰두해 가고 있었다.

나의 천사는 유난히 예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만일 나의 천사를 직접 보지

못한 사람이 나의 천사의 목소리만을 듣는다면 분명히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것이다.

너무나 맑고 투명한 그 목소리는 마치 작은 새소리 만큼이나 듣는 사람에게

호감을 주었었다.

나의 천사는 예쁜 외모에 비해서 그다지 눈에 띄는 편은 아니었다.

언제나 조용히 한 구석에 있는듯 없는듯 존재하고 있는 나의 천사의 모습은

내게는 너무나 커다란 흡족함을 안겨 주었다. 나의 천사는 외모 못지않게 비상한 두뇌를

가진 소유자였다. 우리 동네에서는 수재로 소문난 나였지만 어쩔때는 도저히 나의

천사를 따라갈 수가 없음을 깨달을 정도로... 그리고 나의 천사는 지나치다고 생각될

정도로 자상하고 꼼꼼해서, 늘 덤벙거리기 일쑤인 내게 가끔은 어머니처럼 따스하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집 떠나 있는 내게 있어서 나의 천사는 앞날을 설계하도록

도와주는 아버지였고, 따스한 손길로 보살펴 주는 어머니였다.

그리고 어느 누구보다도 맘 잘 통하는 친구였으며, 가끔은 이유 없는 투정으로

나를 당황하게 만들어 놓고는 깔깔거리며 웃는 장난꾸러기 막내 여동생이었다.



나의 천사는 진짜 동화 속의 공주님 같은 신비감을 가지고 있었다.

나의 천사는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었는데 나의 천사가 부르면 어떤 유치한

유행가도 마치 찬송가처럼 경건하게 들리곤 했었다. 나는 그 당시에는 그 이유를 내

나름대로 해석했었다. 나의 천사의 집은 엄격한 기독교 집안이었고, 그래서 어려서부터

찬송가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모든 노래를 마치 찬송가처럼 부른다고...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결코 그런 이유는 아니었던 것 같다. 나의 천사는

노래를 할 때 입으로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으로 노래했었고, 그 예쁜 목소리 때문에

더욱 돋보였던 것 같다. 나의 천사는 나이에 맞지 않게 너무나 순수한 영혼을 가지고

있었다.

너무나 깨끗한... 나의 천사는 사회 전반적인 흐름이나 동향, 심지어는 다른

사람와 마음까지도 이해할 정도로 많은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행동은

마치 국민학교 꼬마 아이 같았다. 나의 천사는 터무나 여린 마음과 순수한 영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눈물이 많았었다. 나의 천사는 참 잘 울었다. 영화를 보고도...

심지어는 만화책을 보면서도 눈물을 흘리는 그런 소녀(?)였다.

내가 어쩌다가 감기에라도 걸려서 아프면 나의 천사가 얼마나 슬프게 우는지,

마치 내가 죽을 병이라도 걸린 것 같은 착각이 들어 나도 눈물이 나을 것만

같았었다.



그 해 겨울 나는 나의 천사에게 나의 사랑을 고백했었다.

생전 처음으로 하는 나의 사랑 고백은 지금 내가 생각해 봐도 유치하기 짝이

없었던 거 같다. 그러나, 나의 천사는 나의 고백을 받아들여 주었고, 우린 그 해

겨울부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연인이 될 수 있었다. 곧 겨울 방학과 함께 1991년이

되었다.

나는 설 연휴를 제외하고는 공부할 것이 많다는 핑계로 서울에서 그 해 겨울을

보냈다.

난생 처음 그 긴 겨울을 서울에서 보내 봤었는데, 그해 겨울은 유난히 차가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내가 겨울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던 건 나의 천사의

해맑은 미소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시 새학기가 시작되었고, 이제 졸업반이 된 우리는 서로의 장래에 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었었다. 난 그때 내 나름대로의 꿈을 가지고 있었었다. 그녀가 내

진로를 물었을 때. .



"난 더 공부하고 싶어."



라고 대답을 했었다.



"그럼... 더 공부해야지. 넌 머리가 비상하니까 공부하면 성공할꺼야."



"그런데, 난 사실은 유학을 가고 싶었어. 그런데, 너 없인..."



난 맡끝을 흐렸고, 잠시였지만 나의 천사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유학... 널 위해 주고 싶어. 원하면 가야지. 그래... 넌 유학 가도 어울릴꺼야."



"나 기다려 줄꺼니?"



난 너무나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었다. 나의 천사는 잠시 침묵하더니...



"아니. . 난 못 기다릴 꺼야."



"못 기다린다고?"



나는 눈 앞이 깜깜해짐을 느꼈다.



"그래... 못 기다려. 나아... 너 없인... 나 따라갈 꺼야. 그래...



내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너무나 뜻밖의 대답이었다. 내가 상상했던 대답 이상의 대답을 나의 천사는 내게

해 주었고, 우린 꼭 같이 유학을 가기로 약속을 했었다.

그리고, 그 해는 우리에게는 너무나 많은 추억을 안겨 준 한해 였다.



그 해 여름, 어느 날 나의 천사는 그날 따라 내게서 손을 감추고 있었다.

우린 언제나 손을 잡고 다니곤 했었는데... 그날 따라...



"너, 자꾸 왜 그래?"



나는 은근히 짜증이 났었다.



"저어기... 너 봉숭아꽃 아니?"



그 순간 난 나의 천사가 봉숭아 물을 들였다는 걸 알았다.



"어디봐... 에게?? 이게 뭐야? 넌 네 손이 얼마나 예쁜지 몰라서 이렇게 했니?"



여자 형제가 없던 내게는 나의 천사의 에쁜 손톱 주위가 까맣게 변해 버린걸 보고

기가 막혔었다.



"원래 봉숭아 물들이면 이렇게돼. 그치만 한 2주 정도 지나면 살에 물들은 건 다

빠져 버린다. 손톱에만 남아. 너 모르지? 손톱에만 봉숭아 물이 남으면 얼마나

예쁘다고..."



사실 난 그때 조금은 어이가 없었다. 세상에 흔한게 예쁜 메니큐어인데... 그래...

나의 천사는 조금은 엉뚱한 면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건 나의 짧은 생각이었다.

언젠가부터 나의 천사는 손톱을 길게 기르기 시작했다. 물론 손톱에만 남아 있는

봉숭아 물이 예쁘긴 하였지만 깔끔한 나의 천사가 손톱을 기르는게 나는 조금

의아했었다. 그러나, 그 해 첫 눈 오던 날 난 그 의미를 알았다.

그 날 우린 약속에 없던 만남을 가졌다.



첫 눈이 오는 날은 본래 연인들에게는 의미가 있는 날이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었는데..

그녀가 말했다.



"나 이제 집에 가면 손톱 자를 꺼다. 그동안 이거 기르느라고 얼마나

애썼다고..."



"아니? 왜?"



"사실은...



첫 눈 올때까지 봉숭아 물이 손톱 끝에 남아 있으면 첫 사랑이 이루어진대..."

수줍어하는 나의 천사가 그 날따라 얼마나 예뻐 보였는지...

그리고 나의 천사의 마음을 이해 못했던 내가 얼마나 분위기 없이 느껴졌던지,

...

"야... 그럼 너 첫 사랑이 이루어지겠네. 부럽다. 첫 사랑도 이룰 수 있고..."



나의 말에 곱게 눈을 흘기며 나의 천사는



"넌... 넌 첫 사랑이 어떻게 되었니?"



하고 내게 되물었다.



"하하... 바보... 너 아니? 네 첫 사랑이 이루어지면 동시에 내 첫사랑도 이루어진다는 걸..."



그때 나의 천사의 얼굴이 얼마나 빛났는지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땐 참 즐거웠는데... 그러나 나도 나의 천사도 결국은 첫 사랑을 이루지 못한

걸 보면 첫 사랑과 봉숭아 물과 첫 눈은 아무 상관이 없었나 보다.



졸업을 앞두고 나는 아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나의 천사를 추운 서울에

남겨 두고 고향에 내려갔다. 나의 진로를 묻는 부모님께 나는 은근히 나의 천사

이야기를 비추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너무 경솔했었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조상

모시기에 열심이었고, 거의 매달 제사가 있었다. 더군다나 나는 집안의

종손이었기 때문에, 나의 천사에 관한 이야기는 당연히 부모님께 거슬렸던 것 같다.

나의 천사의 집안이 엄격한 기독교 집안이라는 사실이... 그리고, 고지식한 우리

집안 어른들께는 여자가 외국 유학을 꿈꾼다는 사실을 이해 하실 수 없었다.

나의 어머니는 종갓집 맏며느리답게 나름대로의 의지가 당당하신 분이었는데,

나의 천사에 관한 이야기만 들으시고도 강한 반발을 하셨고, 결국에는 나에게

나의 천사와의 이별을 명하셨다.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난 그때까지 집안에서

모범생이라는 소리를 듣는 효자였기 때문에, 내가 나의 천사의 편을 들은 것이 오히려 화근이

되었다.

너무나 엄청난 부모님의 반대에 나는 그만 손을 들수밖에 없었다.

그래... 난 그때 짧은 생각에 이토록 까다로운 우리 집에 나의 천사를 데려다

눈에 뻔히 보이는 고생을 시키느니 나의 천사에게 더 좋은 기회가 주어지도록 놔 줘야

겠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우리 어머니의 감시망 속에 그 해 겨울은 고향에서

보내야 했고, 나의 천사에게는 거의 연락도 못 하고 지냈다.



졸업식을 며칠 앞두고 난 어머니 감시망을 피해 서울에 올라올 수 있었는데,

오랜만에 만난 나의 천사가 얼마나 야위었는지 안타깝기만 했었다.

나의 천사도 전화를 통해 대충 우리 집안 분위기를 알고 있었지만, 나의

천사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것 같았다. 제사 한번 없는 신식 집안에서 자라난 나의

천사에게는 사랑은 당사자간의 문제였지만, 나에겐 집안 문제였던 것 같다.

난 야속하게 나의 천사에에 결별을 선언하려 했지만 막상 얼굴을 보니 도저히...

그 천진난만한 얼굴에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나의 천사는 나의 졸업식에 그토록

오고 싶어했지만, 나의 어머니 때문에 나는... 그리고는 우린 기약도 없이 다시

헤어져야 했다.

나는 물론 유학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집안 어른들은 내가 사고라도 칠까

봐 당분간 옆에 두고 싶어하셨다. 할 수 없이 나는 고향에 내려가서 아버지 일을

도와 드리게 되었다. 그리고, 난 어머니의 성화에 선을 보았다.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을 본 그 여자는 나의 천사와는 너무나 다른 여자였다.



그녀는 우리 고향에서조차 알아주지 않는 지방 대학을 다니고 있었고,

아주 쾌활한 성격이었다. 단지 그녀가 우리 어머니 맘에 든 이유는 그녀의 집안도

우리 집안과 흡사하게 유교를 숭상하는 집안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내 마음이었다. 나의 천사와 비슷한 점을 눈씻고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그녀였지만, 그녀에 의해 나의 천사를 향한 뻥뚫린 가슴이

채워지고 있었다. 나는 처음에는 나의 천사에에 너무나 미안했었다.

가끔씩 나의 천사의 안부를 친구를 통해 듣곤 했었는데, 나의 천사는 그다지

변화가 없었다고 한다. 나는 그때 약간의 배반감을 느꼈었다.



'그래... 누군가 그랬어. 여자는 남자보다 더 현실적이라고...

그래서 사랑까지도 더 쉽게 포기하고 현실에 잘 적응한다고. . '



그러나 그건 내가 그 당시에도 나의 천사를 완전히 이해 못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나는 집안 어른들의 성원과 나의 천사에 대한 그리움과 배신감에 뒤범벅이

되어서 선본 그녀에게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그녀는 단순했으며 감정이 솔직한

편이었는데, 내 이상형과는 아주 거리가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가 싫지

않았고, 나는 그런 내 감정을 사랑이라고 생각했었다.



친구의 결혼식 참석차 1992년의 늦은 봄 날 나는 서울을 가게 되었다.

그 친구는 나의 천사와도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는데, 나는 결혼식장에서 나의 천사를 보았다. 한 눈에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너무나 야위어 버린 나의 천사의 모습에 나는 너무나 놀라고 말았다.



"오랜만이야"



우린 그 날 저녁까지 함께 할 수 있었는데, 내 생각과는 달리 나의 천사는 나를 잃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우리... 다시 시작할 수 없을까? 나... 너 없인 너무 힘들어."



눈물 섞인 나의 천사의 말에 나는 잔인하게 거절을 했다.



"우린 이미 너무 늦었어. 그리고 난 이미... 지금 다른 여자와 결혼 이야기가 오가고 있어."



나는 나의 천사에게 하지 말아야 하는 말까지 그만 해버리고 말았다.

그때 나의 천사 얼굴에 나타나던 그 절망의 모습은 차마 표현하기 조차...

나의 천사는 나를 조금도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고향으로 돌아와서도 나는

한동안은 너무나 괴로웠다. 나는 너무나 잔인하게 나의 천사를 배반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러나 집안 어른들을 따르기로 한 나는 나의 천사에게 나보다 더 좋은

남자가 곧 생길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선 본 여자는 내게 자꾸만 사랑을 요구했었다.

그녀는 성격처럼 대담해서 남자인 나도 당황하게 만들곤 했었다.

뺨에 가벼운 키스를 해도 얼굴이 붉어지던 나의 천사와는 달리.. 그리고,

어른들은 자꾸만 결혼을 서둘렀다. 나는 그때 나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 줄 착각하고

있었다.



그 해 겨울 양가 어른들은 내가 유학 가기전, 돌아오는 새 봄에 나와 그녀를

결혼시키기로 약속하셨고, 그녀는 이제 우리집을 자연스럽게 드나들었다.

원래 쾌활한 그녀였지만 마치 몇년을 같이 산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로 그녀는

우리집의 일부가 되어 갔다. 첫 눈이 내리던 날... 난 그녀와 첫눈을 맞으며

하루를 보냈고, 그녀를 집에 데려다 주었다. 우리 집 골목 어귀에 들어오다가 나는

너무나 놀라고 말았다.

순간 환상인줄 알았었는데, 금방 현실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의 천사가...

너무나 야위어서 눈만 동그랗게 남아 있는 나의 천사가 거기 서 있었다.



"미안해... 서울에도 첫 눈이... 너무 네가 그리워서... 미안해... 미안해. ."



오직 미안해라는 말만을 몇 번이고 반복하던 나의 천사의 모습은 너무나

애처로왔다.

그러나, 나는 나의 천사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고, 나의 천사는 그 동그란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그날 밤차로 서울로 돌아갔다. 그때는 몰랐었는데... 그날 난

나의 천사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되었다.



1993년 봄. 계획대로라면 나는 결혼식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도저히 맞지 않는

제멋대로인 그녀의 성격에 우리는 자주 언쟁을 해야했고, 지금 생각해 보면 별일

아닌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나는 헤어졌다. 나는 결혼을 생각하던 여자랑

헤어지면 마음이 몹시 아플것이라 생각했었는대, 오히려 홀가분해짐을 알았다.

내가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그녀에 대한 감정은 사랑은 아니었었나보다.

나의 천사와 헤어질때의 그런 아픔을 조금도 느낄 수가 없었다. 나는 그때서야

알았다.

내가 사랑하고 있는 상대는 변함없이 나의 천사라는 걸... 나는 기회를 봐서

서울로 올라갔다. 이제 나의 천사를 만나야 한다고... 그리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나의 천사만 옆에 있어 준다면 집안 어른들의 반대도 극복할 수 있을꺼라고...

얼마나 멋진 일인가? 나의 천사랑 같이 유학도 가고, 나의 천사랑 함께하는

시간을 다시 가질 수 있다면... 나는 서울 올라가는 기차 안에서 얼마나 많은 행복에

빠겨들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서울에 올라와서 나의 천사의 집에 전화를

했을때, 나의 천사네 가족이 이사를 했음을 알았다.

갑자기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려음에 빠져들었고, 여태껏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나의 천사를 향한 사랑에 몸부림쳤다. 친구들을 통해 나의 천사의 친구들을

수소문 해 본 결과, 나는 너무나 뜻밖의 소식을 접하고 말았다.



나의 천사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지난 해부터 날로 야위어 가던 나의

천사는 겨울 첫 눈 내리던 날 어딘가를 혼자 다녀왔는데, 그게 무리였는지 심한

고열과 헛소리에 시달리다가 결국에는... 그 날이었다. 나를 찾아오던 그 날... 생각해

보니 난 그 날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긴 기차 여행에 지칠 대로 지친 나의 그녀에게

저녁한끼도 주지 못하고 돌려보냈음을 깨달았다.

그 추위에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추위에 떨다 돌아간 나의 천사...

내가 얼마나 나의 천사에게 잔인했었는지... 나는 내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고향에 돌아온 나는 한동안 앓았다. 내가 왜 그런 별볼일 없는 여자에게 빠져서

나의 천사를 힘들게 했는지... 왜 내가 나의 천사를 위하여 부모님을 설득하지

못했는지...

나약하기만 했던 내가 너무나 미웠고 견디기 힘들었다.



그 해 나는 입학 허가를 받았고, 나는 내게는 너무나 아픈 땅을 떠나 이곳으로

왔다.

시간이 흘러 이제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나의 천사에 대한 사랑은 더욱

뚜렸해짐을 느낀다. 나의 천사의 마지막 1년을 생각해 본다면 나는 너무나 많은

죄를 저지른 기분이다.



나의 천사야... 미안하다. 난 너무나 용기 없는 바보였단다.

넌 바보 같은 내가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만족해했었는데...

난 이제 알아. 내게 있어서 네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말야.

난 널 평생 잊지 못할꺼야. 네가 허락한다면 난 널 위해서 나머지 내 삶을

살아가고

싶단다. 너만을 그리워하면서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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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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