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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첫사랑 1
그 아가씨를 처음 보게 된것은 1학년 1학기 심리학 수업시간이었다...
눈이 아주 컸으며 얼굴은 말그대로 달처럼 동그랬다...
사실은 타원이었지만 우리 동문사람들은 그 아가씨를 보고 동글이라고 하였다...
내가 그 아가씨를 보게 된 이유는 약간은 밝히기가 부끄럽다...
(사실 그전에도 볼수 있었겠지만 신경을 안 쓰고 있었으므로 알지못했다...)
그날은 심리학 중간고사가 있는 날이었다...
우리과 1학년들은 매우 친했다...
우리과 동기들은 심리학 수업을 거의 10명이나 같이 듣고 있었다...
시험 전날 우리들은 심리학 시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잔치집으로 갔었다...
물론 심리학은 우리의 관심이나 불안의 대상이 아니었다...
우리에겐 오로지 역학과 수학 그리고 물리학만이 걱정의 대상이었다...
드디어 시험날 날씨는 매우 흐렸다...
2시에 시험을 치는데 시험치러 온 사람들은 벌써 12시부터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장소는 문창회관 대 회의실...
엄청난 수업인원으로 인해 거기밖에 장소가 없었다...
물론 우리편들은 시험내용에 관해 전무의 상태였다...
대충 우린 눈에 안 띄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책을 30분만에 다보고 그리고 책상에 외워두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내용이 중요한질 모르므로 우리의 외우기는 거의 효율이 없다는 것을 우리
자신도 알고 있었다...
우린 담담히 기다렸다... 누굴 기다린 것일까???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어제의 술자리에 빠진 우리 동기였다...
우리의 기대는 그 녀석이 시험공부를 다하고 와서 우리에게 쪽지를 넘겨주는 것이었다.
드디어 그녀석이 왔다...
그녀석이 문을 열고 들어왔을때 우리의 희망은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그 몰골하며 부시시한 머리 분명 집에 안들어간게 틀림없었다...
그 녀석의 말로 그 사실은 분명해졌으며 한차례 그 녀석에 대한 집단구타 뒤에 우리는
허탈감에 모두 모여서 담배를 태우며 대책을 논의했다...
그러나 대책이 있을리 없었다...
다시 자리에 들어와 앉았다...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우리앞에 보인건 머리가 길고 굉장히 책을 열심히 보는 여학생
둘이었다...
평소 동문여자애들과 그외 다른 여학생의 경우를 볼때 여학생들은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우린 서로의 눈을 쳐다보며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것인가를 눈으로 얘기했다...
우리편들의 시선은 나에게로 집중되었다...
할수없이 나는 앞의 아가씨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이내 돌아봤다...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
"저... 전 공대 모계과 학생인데 그쪽은 무슨과세요?"
"저요? 왜그러시는데요?"
"아니 뭐 그냥요..."
한참동안 그 아가씨는 나를 보고 있었다...그리고 그 친구도 함께...
"사범대 모교육과요.."
"아 예... 공부 많이 하셨어요?"
"공부는 다했는데 좀 더봐야겠어요..."
공부를 다했다는 말에 우리편들의 얼굴에 만연하는 웃음을 아직도 잊을수없다...
그뒤 잠시 정적이 흐르고 난 더이상 말하기가 부끄러웠다...
우리편들은 눈으로 나에게 빨리 말하라고 압력을 넣었다...
다시 말문을 열었다...
"저어... 사실은 저희가 공부를 안했거든요...어제 일이 있어서요..."
옆에서 우리 부총대 녀석이 거들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좀 보여주실래요?"
황당한 그 아가씨의 모습...
아 난 고개를 숙인채 옆의 우리편들을 쳐다봤다...
잠시후 그아가씨의 입에서 말이 떨었졌다...
"그럼 아는 만큼만 보여드릴께요..."
이말에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나쁜놈들의 "재수~~" 하는 소리...
우린 다같이 몰려나가 담배를 피웠다...
"수고했다... 오늘저녁과 술값 그리고 저아가씨한테 드는 비용을 우리가 다 책임지마"
부총대와 우리편들이 나에게 말했다...
다시 우리는 들어가서 자리배치를 확실히 하고 필기구를 준비했다...
드디어 교수가 들어왔다... 시험지를 한 아름 들고...
근데 이게 왠일인가...
교수 하나에 심리학과 조교들이 5명이나 들어오는게 아닌가...
그러나 우린 걱정을 안했다...
그정도 감시망을 벗어나는건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며 문창회관 대회의실의 면적으로
볼때 그리 삼엄한 감시망은 아니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교수가 맨앞으로 가서 마이크를 잡았다...
마이크를 잡은 교수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 이런 형태로는 시험을 칠수 없으니 자리배치를 다시 하겠습니다.
시험요원들이 정하는 대로 다시 자리에 앉아 주시기 바랍니다."
이야기가 끝나자 심리학과 조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시험치러 온 학생들을 과별로
모아서 앉혔다...
두드러진것은 공대를 오른쪽 뒤편에 다 모아 앉힌 점이었다...
아 이게 무슨 청천벽력같은 일인가...
그아가씨는 저 앞 맨앞쪽으로 끌려가고 말았다...
그 친구 또한 같이...
우리편들의 당황한 모습들이 이어졌고...
시험이 시작되었다...
우리편들은 시험을 매우 빨리쳤지만 계속해서 자리에 앉아있었다...
공대 지역에는 전담 조교가 두 명 움직이지 않고 감시를 하고 있었다...
드디어 앞의 공부 열심히 하는 여학생들이 한명 두명 답안지를 내기 시작했다...
우리편들은 눈으로 나가자는 신호를 한뒤 앞으로 줄줄이 나갔다...
모두들 힘없는 표정이었다...
그때 교수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탁자에 심리학 실험 지원서가 있는데 지원하면 보너스 점수가 있습니다."
재수~~~...
우리편들은 일렬로 줄을 섰다...
내가 맨 앞이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지원서에 자기이름과 과와 학번을 적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내 앞의 여학생이 종이에 기록을 했다...
기록내용은 '모교육학과 92학번 이모'였다...
어디서 들은듯한 학과. 얼굴을 보니 아까 그 아가씨였다...
'오 92학번이구나...'
나는 그냥 그렇게 보고 나의 학번등을 기록하고 문창회관을 빠져나와 우리편들과 같이
우리 아지트로 갔다...
그런 일이 있은 며칠후...
그날은 3,4교시에 서양문화사시간이었다...
나는 1,2교시가 없었으므로 10:30쯤에 상대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상대 4층...
시간은 10 : 40분 나는 로비에 앉아서 담배를 피웠다...
햇빛이 따까왔으므로 나는 계단쪽을 향해 얼굴을 돌리고 있었다...
그때 여학생 두명이 계단을 올라오는것이 아닌가...
큰 눈, 동그란 얼굴 ...
좀처럼 사람의 얼굴을 잘 잊지 않는 나의 기억속에 분명히 어디선가 본기억이 떠 올랐다...
'어디서 봤을까? 분명히 본 사람인데...'
그 아가씨와 그 친구로 보이는 아가씨는 나의 옆 긴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서로 아주 재밌게 얘기를 했다...
드디어 앞수업이 끝났다...
상대강의실은 극장식이다...
나는 중간 분단의 중간쯤에 앉았다...
내 옆에는 나와 심리학을 같이 듣는 우리과 친구가 앉았다...
지루한 서양문화사...
나는 내내 어디서 보았는지를 기억해내기 위해 끙끙거렸다...
40분쯤 수업을 하고 쉬겠다는 교수님의 말...
난 골치아픈 기억찾기로 피곤해진 머리를 식히고 갈증을 풀기위해...
1층 음료수 자판기로 갔다...
콜라를 빼고 문득 교수님한테 커피라도 한잔 갖다드려야겠다는 기특한 생각에 커피를
한잔 뽑았다...
강의실 앞문을 통해 교수님에게 커피를 드리고 나의 자리에 가기 위해 방향을 바꾸어
강의실 전체를 보았을때 수많은 사람들 얼굴속에 내 눈속에 들어온 커다란 눈과 둥근
얼굴...
눈이 마주침과 동시에 전기가 이는듯한 온몸의 전율...
잠시 정지했다가 이내 내자리로 갔다...
그아가씨는 나의 오른쪽 문단 앞쪽에 앉아있었다...
필기도 거의 없는 수업시간...
나는 그 아가씨 뒤통수만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디서 봤을까? 누구더라?'
한참을 보고 있었다...
그때 살며시 고개를 돌리는 그 아가씨...
다시 한번 스파크가 이는 눈빛의 마주침...
후다닥... 나는 공책에 필기하는 자세로 들어갔다...
물론 그아가씨도 전광석화처럼 필기자세로 들어갔다...
칠판에는 아까 쉬는 시간에 닦은 자국만이 선명하게 남아 깨끗했다...
10초쯤 필기자세를 취하다가 고개를 들어 그쪽을 주시했다...
그 아가씨는 아직도 필기 자세였다...
우스웠다...
나는 다시 주시하기 시작했다...
나의 머리는 하드에서 저 아가씨의 기억을 찾아내기 위해 분주히 돌아가고 있었다...
5분쯤 지났을까???
다시 돌려지는 고개 두번째 스파크...
나는 필기자세도 아닌 그대로 그 아가씨의 얼굴을 주시했다...
물론 그아가씨는 다시 필기자세로 들어감을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그 아가씨의 얼굴을 완전히 기억시키는데는 부족함이 없는 시간이었다...
삐... 내머리는 드디어 그아가씨의 정보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심리학시간...
나는 내옆 우리과 친구에게 그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날은 흐리고 공적인 관계로 말을 걸었기 때문에 얼굴을 자세히 보지 못했는데...
오늘은 맑은 햇빛아래 그 아가씨의 얼굴을 보았다...
새하얗고 동그란얼굴, 긴머리, 체크무늬 남방...
오우 이럴수가... 이런 아가씨가 우연히도 나와 수업을 두개나 같이 듣다니...
수업이 끝났다...
나의 가슴은 중학교때 이후로 이렇게 뛰어본적이 없었는데...
우리편에게 저애 어떠냐하고 묻자 그 놈은 참 괜찮다라는 말로 그 아가씨의 객관적인
참신함과 괜찮음을 나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금정회관까지 같은 길이었지만 그이후로는 다른 길이었다...
게속해서 따라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내 옆의 나쁜놈 때문에 더이상 가지 못했다..
이후로 심리학수업과 서양문화사 수업은 한번도 빠진 적이 없는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어떻게 한번 말을 걸어보나하고 고심했다...
그 아가씨 혼자라면 문제가 없으나 그 아가씨와 거의 같이 다니는 그 친구가 문제였다...
'어쩌지?? 저 친구애를 어떻게 따돌릴까??'
다음다음 서양문화사 수업시간전 그 아가씨와 그친구는 어김없이 수업을 듣기위해 계단을
올라와 의자에 앉았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용기를 내서 말을 걸어... 그래 친구 한명인데...'
나는 일어서서 그 아가씨와 그친구가 앉아있는 긴의자쪽으로 발을 옮겼다...
그리고는 말을 시작했다...
"저..."
이런 젠장할... 말을 걸기로 했으면서 할말을 생각하지 못했다니...
"왜 그러시는데요?"
또렷한 그 아가씨의 말소리...
"저... ▲▲과시지요?"
한참만에 입을 열었다...
"아닌데요 ▲▲교육과인데요"
이럴수가 사범대임을 알고 있었는데 말이 헛나오다니...
"아..예. 죄송합니다. 저... 혹시 저번 수업에 출석 불렀나요?"
사실 저번 수업도 나는 들었었다...
"아니요. 출석 안불렀어요"
그아가씨와 친구는 서로 마주보며 잠시 웃었다...
나는 고맙다는 말을 하고 가방을 들고 화장실에 갔다...
왠 열이 그리도 나는지...
수업 시간 내내 그 아가씨의 친구 한명을 어떻게 따돌릴 것인가를 생각했다...
항상 같이 앉는 과친구 JS와 여러가지 방안을 함께 강구했다...
그러나 답이 나오질 않았다...
시간은 그렇게 그렇게 지나갔다...
심리학 수업은 종강하고 서양문화사 수업만이 남았다...
시간은 흘러서 오늘로 서양문화사 수업은 종강이다...
매우 큰 위기 의식을 느꼈다... 오늘이 마지막인데... 이걸 어쩐다...
JS는 전부터 그냥 한번 부딪혀 보라고 난리였다...
수업시간...
1시간만에 수업은 종강되고 시험칠 날짜와 장소를 말해주고 교수님은 나가셨다...
우르르 나가는 학생들...
난 상대 계단에서 결판지을 각오를 하고 가방을 무겁게 들고 일어섰다...
물론 시선은 한 곳에 고정시킨채로...
상대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난 발걸음을 좀 빠르게 하고 뒤를 쫓았다...
많던 사람들은 하나둘 길이 달라지고...
상대 2층 계단에는 그 아가씨와 그옆에 약간의 사람들이 있었다...
근데 이상했다...
분명 그아가씨와 그 친구 두명이 함께 걸어가야 할텐데 왠일인지 그 친구 외에 4명이
나란히 가면서 얘기하고 있는게 아닌다...
이럴수가 내가 파악하지 못한 그 아가씨 과 친구들이 4명이나 더 있었다...
내가 알고 있던 그 친구를 포함 5명의 친구들이 있었다...
오우 하느님 맙소사...
5명을 따돌릴 재주는 나에게는 없다는것을 난 잘 알고 있었다...
JS는 그 사실을 알고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계속 키득거렸다...
상대입구와 사회대 사이의 계단으로 들어섰다...
예정은 상대 1층이나 2층 계단이었으나 돌발적인 사태가 발생했으므로 난 실행을
보류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 아가씨 일행은 계단 중간쯤 가고 있었고 난 상대 입구에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얼굴에 철판 한번 깔자...'
난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용기로 단박에 계단을 내려가서 그 일행 뒤에 섰다...
JS의 비명같은 웃음소리를 뒤로한채...
난 그 아가씨 어깨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이내 돌아보는 그 아가씨와 함께 돌아보는 그 일행들...
이런 제길할... 눈을 뜰수가 없었다...
여름 햇빛에 비친 그 아가씨의 얼굴은 마치 거울같이 나의 눈에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저 얘기좀 할수 있을까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뭐때문에 그러시는데요?"
숨쉴틈도 없이 대답하는 아가씨...
망할... 남자가 얘기좀 하자는데 뻔하잖아...
"그냥 얘기 좀 할수 있을까 해서요..."
그 아가씨 외에 그 일행들은 벌써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고, 그중 두어명은 다른 두어명의
일행의 옷을 잡아당기며
"야 우린 빨리 가자,눈치도 없이..."
라고 말하면서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5명의 일행은 계단을 내려가면서
"MY야 잘해봐.."
하고는 걸어가면서 계속해서 넘어갈 듯이 웃고 있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내 얼굴이 홍당무가 된적이 한번도 없었다...
계단에는 나와 그 아가씨만 남아있었다...
어쩌면 이 아가씨는 나를 교내에서 1학년을 대상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그런
학생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침묵이 흐르다가...
"저 어디가서 얘기 좀 할수 있을까요?"
다시 물었다... 대답이 없었다... 한참만에
"저 지금 친구들이랑 도서관에 책 빌리러 가는데..."
'아이고 역시 꽝이구나... 이거 본전도 못 건지고...'
내 뇌리속을 횡횡하는 후회와 실망...
"아 그러시군요... 음..."
그 말을 남기고 돌아서려고 생각하고 있는 순간 혜성같이 터진 그 아가씨의 말...
"저... 같이 가실래요?"
갑자기 숨이 멎는듯한 기분...
같이 가자니 나는 한명이고 그쪽은 합쳐서 여섯인데...
나는 뒤를 돌아 상대 입구를 보았다...
나의 지원군 JS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음... 그 쪽 친구들 있는데 같이 갈수는 없고..."
이걸 어쩐다.
같이 안가면 완전히 물거품이고 같이 가면 아까 그 상황이 다시 재연될텐데...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했다...
그 아가씨가 입을 열었다...
"저 그러면요... 나중에 만날까요?"
이게 왠 한밤 바다위의 등대같은 말이냐...
"아 그러실래요... 그럼 나중에 밥먹고 1시 반에 만나지요..."
기쁨에 찬 나의 말에 그 아가씨는 그러자고 하면서...
어디서 만나는게 좋으냐고 물었다...
물론 시계탑이지...
내가 아는 학교구조물은 몇 안되었기 때문에...
근데 갑자기 내 머리속을 지나가는 한가지 생각...
'어 이거 바람 마추려는 고전적인 수법 아닌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근데 나중에 바람 맞는거 아니에요?"
그 아가씨는 절대 그럴리 없다면서 반색을 했다...
나는 믿는수 밖에 도리가 없었기 때문에 그러자고 하고는 헤어졌다...
날아갈듯한 기분으로 선배 자취방에 갔다...
선배가 라면먹으러 오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라면을 배불리 먹고 설겆이까지 다해주고도 시간이 남았다...
라면 먹으러 가면 설겆이 할 걸 다 알고 있었지만 설겆이 하는 시간도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너 왠일이냐? 뭔 일있냐? 뽕맞았냐?"
싱글거리며 설겆이 하는 나에게 선배가 물었다...
"하늘같은 선배님이 시키는 일인데 즐겁게 해야죠..."
자취방에서 담배를 한대 피고...
15분전에 시계탑으로 나갔다...
5분이 흘러 10분전 , 또 5분이 흘러 5분전... 바람은 쌩쌩 불고 있었다...
3분이 흘러 2분전...
'에고 바람 맞는구나...'
총학에서 시게탑에 걸어둔 깃발은 나를 놀리듯 미 친듯이 펄럭거리고 있었다...
1분전...
넉넉한 터 입구에서 걸어오는 눈이 큰 아가씨...
오우 하느님,부처님 감사합니다...
다음 크리스마스때는 꼭 교회에 갈께요...
초파일에 꼭 절에 가서 등 달께요...
"안녕하세요... 시간을 참 정확하게 지키시는군요..."
"예.. 전 약속있으면 한 1분전쯤에 도착해요..."
"자.. 그럼 갑시다..."
"근데 어딜 가지요?"
'이런 어디갈건지를 생각해놓지 않았군..'
"일단 교문 밖으로 나가지요..."
말없이 교문 밖까지 걸었다...
우리 앞에 펼쳐진 수많은 찻집... 우린 A찻집에 갔다...
8월이라 햇살은 화살처럼 따가웠고 열기는 후끈했다...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이내 물이 나오고 메뉴판이 나왔다...
"뭐 드실래요?"
내가 물었다...
"저 근데 사주는 거예요?"
'이런 순진한 아가씨가 있나... 당연히 사주지...'
"예 걱정하시지 말고 팍팍시키세요... 거기있는 500원짜리 이하로..."
터지는 아가씨의 웃음...
"전 파르페 먹을께요..."
"저 여기요... 파르페하나 하고 체리쥬스 하나 주세요..."
주문을 끝내자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무슨말을 할까...
할말이 생각났다...
"저 좀 황당하지 않으셨어요? 왠 시커먼 남학생이 얘기좀 하자고 그래서..."
"아니요 용기있어서 좋았어요..."
순간 대학합격때보다 더 기쁜 나의 심정...
사실 엄청난 용기였다...
역시 용기있는 자만이 성취하는 진리를 몸으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난 나를 더욱 용기있게 만들어준 그 아가씨 친구 다섯명에게 감사했다...
한번도 이렇게 가까이서 그 아가씨 얼굴을 본적이 없었다...
상대앞 계단에서 그 아가씨를 똑바로 볼수가 없었다...
너무나 눈부셨기 때문이다...
맑은 눈, 어린애같이 천진한 웃음...
난 대학에 와서 한번도 저렇게 웃어본 적이 없었다...
너무나도 해맑은 그 아가씨의 웃음에 나는 넋이 나갔는지도 모른다...
뭔가 말을 해야했다...
"▲▲교육과면 나중에 선생님 되시겠네요?..."
"선생님 될지 안될지 잘 몰라요... 지금 100년이나 밀려있다는데..."
"집은 어디세요?"
"K동이예요.."
"아 그럼 ▽▽번 버스 타고 가시겠네요...?"
"예... 집이 좀 멀어요..."
"시간 많이 걸리지요? 온천장 지나가는데 차 많이 막히는데... 전 M동 살아요"
"고등학교는 어느 학교 나오셨어요?"
"D여고요... 그쪽은요?"
"아 전 K고등학교 나왔습니다..."
"저 우리 말 놓지요...학번도 같은데..."
이럴수가 먼저 말놓자고 하다니... 바라던 바였다...
"그럽시다... 아 내 소갤 안했네.. 난 모계과 92학번 ◇◇◇야..."
"그래? 난 MY이야... 과는 알거고..."
"근데 왜 날 보자고 했니?"
그 아가씨가 나에게 말했다...
"음 전부터 너를 보고 있었어...
너 심리학도 듣지? 문창회관 대 회의실에서 하는 수업 말이야...
거기서 너랑 나랑 봤을텐데..."
그 아가씨는 의아해했다...
"그 수업 듣기는 듣는데 언제 봤는데..."
말을 하려다가 약간 부끄러웠다...
"음 언제냐 하면... 중간 고사 칠때였는데... 내가 너보고 좀 보여달라고 했었는데"
"아... 그 똥똥한 애랑 같이 있었던게 너구나..."
우리 부총대 녀석을 그 아가씨는 '똥똥한 애'라고 불렀다...
이렇게 말문을 열어서 우린 시간 가는줄도 모르고 얘기를 했다...
문득 시계를 보니 3시간이 흘러갔다...
"벌써 3시간이나 흘렀네... 그만 일어나자..."
섭섭했지만 일어섰다...
카운터에서 계산을 할 동안 그 아가씨는 그 찻집 성냥을 두개 집었다...
그리고는 나와서 나에게 하나 주었다...
"너 어디 갈거니?"
나에게 물었다...
"학교로 올라가야지..."
"너 도서관에서 공부하니?"
"아니 ... 난 강의실에서 공부해... 강의실은 넓고 자유스럽거든..."
"강의실? 그렇구나 음... 나도 공부나 하다 갈까?"
이 말에 난 너무 기뻤다...
내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바였기 때문이다...
"그래... 같이 공부하다 가자..."
"아니야, 집에 가야겠어..."
아마도 처음 본 남자애랑 같이 더 이상 있는다는 것이 어쩐지 불안했는가 보았다...
"그래 그럼 다음에 어디서 만나지?"
나는 자연스럽게 다음 만남을 유도했다...
"음 1주일 뒤에 XX에서 YY시간에 만나자..."
"그래 알았다... 잘가라..."
"너도 공부 열심히 해..."
나는 너무나 기뻤고 불안하리만큼 일은 너무나 잘되가고 있었다...
그 아가씨를 보내고 돌아선 학교 문...
시계탑위로 태양은 금정산을 구렁이처럼 넘어가고 있었다...
그 다음 만나서 간곳은 구문쪽 E찻집이다...
이 찻집은 다른 찻집과는 달리 술과 식사 그리고 DJ까지 있는 음 뭐랄까...
약간의 고급스러움을 풍기는 그런 찻집이다...
그러나 가격은 그리 비싸지 않다...
이집은 지금은 없어져서 나의 마음을 매우 아프게 하고 있다...
문을 열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집은 칸칸식으로 되어 있는 그런 집이다...
자리가 근데 너무 문쪽이었다...
그래서 우린 좀 더 안쪽으로 가려고 일어섰다...
그리고 안쪽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순간 저쪽 자리에 있는 아는 얼굴들...
우리 동문들이었다...
참고로 이 집은 거의 우리 동문 아지트나 다름없었다...
하필 오늘같은날...
선배도 있었다... 동기도 있었다...
선배에게 어쩔수 없이 인사를 했다...
그 아가씨도 나를 따라서 얼떨결에 인사를 했다...
우린 안쪽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차를 시키고 마주보고 우린 웃었다...
보고만 있어도 기분좋은 웃음이 나오는 그런 사람...
뭔지는 모르지만 그냥 느껴지는 평안함...
그냥 이대로 시간이 정지했으면 하는 안타까운 소망...
말없이 한참을 서로 바라 보았다...
이때 옆에 불쑥 들어오는 괴한...
"안녕하세요... 저 이놈 동기입니다..."
으... 이런 망할놈... 눈치도 없이...
불쑥 들어온놈은 동문회에서 나랑 가장 친한 놈이었다...
지금도 군대에서 휴가 나오면 그 아가씨랑 잘되고 있냐하고 묻는 놈이다...
그럴때마다 나는 항상 말한다.
너만 아니었으면 잘되었을텐데 하고...
얘기의 주도권은 그놈에게 옮겨갔다...
그 놈은 그 아가씨를 나에게서 뺐아서 아예 나를 없는 놈 취급하면서 그 아가씨랑
얘기했다...
이제 좀 가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버틴다...
아웅다웅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그 아가씨는 웃었다...
난 천사를 본적이 없다...
하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천사의 미소란게 저런것이 아닐까?
너무나 평화롭고 아무 걱정이 없고 전혀 피곤하지 않은 너무나 맑은 미소...
한 20분간 있다가 그놈은 우리 동문들이 모여있는 자리로 갔다...
휴... 이제 좀 안심이구나...
그러나 평화도 잠시...
이번에는 선배가 오는것이 아닌가...
디스켓을 한장 들고와서는 XX좀 복사해서 주라고 하고는 한참동안 그 아가씨를
쳐다보고는 갔다...
약간 황당한 그 아가씨의 얼굴...
더 이상 있기가 좀 그랬다...
"MY야 놀랬지? 여긴 우린 동문들이 많이 와... 우리 아지트거든..."
"괜찮아... 그럴수도 있지 뭐... 아까 걔 정말 웃기더라..."
"우린 좀 있다가 나가자..."
"그러자..."
조금 있다가 우리 둘은 일어섰다...
나가는 길에 선배에게 인사를 하고 나가는데 등뒤에서 들리는 말소리...
"그 아가씨 보내드리고 빨리 여기 와라..."
으... 이런... 다시 오라니...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하늘은 찌뿌둥하게 흐려있었고 간간히 비가 내렸다...
"들어가봐... 선배한테 혼날라..."
내게 말했다...
"미안해... 일부러 그런건 아니야...
그런데 어쩌니? 나때문에 좋은 시간 다 망치고 정말 미안해...
다음에 전화할께..."
"근데 너 우리집 전화번호 아니? 모르잖아"
"응..몰라 니가 안가르쳐 줬으니깐...지금 가르쳐 줘.."
잠시 망설이다가 그 아가씨는 나에게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나도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다...
드디어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오늘 영 이상하게 되었지만 전화번호를 알아낸건 아주 큰 수확이었다...
잘가라는 인사를 하고 나는 다시 찻집으로 들어갔다...
우리 동문들이 앉아서 시간을 죽이고 있는 그 자리...
내가 들어서자 마자 터지는 웃음들...
그리고 쏟아지는 질문들...
나쁜 인간들... 저러니 아직 전부 짝지가 없지...
잠시후 나는 끌려서 당구장에 갔고...
당구장에서 그 선배를 아주 비참하게 깨주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내내 난 그 번호를 외우고 있었고...
혹시나 하는 염려에 거의 모든 노트와 책에 전화번호를 적어놓았다...
외우기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는 나의 암기력도 그 전화번호를 외우는데에는 집에 다
올 때가지의 시간이 걸렸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향해 걸어가는 동안에도 하늘은 계속해서 흐렸다...
우린 거의 일주일에 한번씩 만났다...
만나는 순간마다 난 너무나 기분이 좋았고...
너무나 많은 풍족감을 느꼈다...
알수 없는 이 기분...
그러나 항상 불안했다...
뭔가 모르지만 불안했다...
나에게 이런 기쁜 일이 계속해서 이어진적은 이때까지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날 우리는 다른때처럼 만났다...
정문쪽 C찻집에 갔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자리가 없었다...
그위 Y찻집에 갔다...
거기도 자리가 없었다...
다른데로 가면서 그 아가씨의 동문들을 만났다...
물론 남자 동기들이 섞인 무리였다...
잠시 대화를 하고 우린 다시 걸었다...
"어디에 가지?"
내가 물었다...
"몰라 아무데나 가자.."
그때 그 아가씨가 말했다...
"우리과 애들한테 잠시 갔다 가자...저기 XX찻집에 우리과 애들이 있어...
잠시 보고 가면되..."
"그럼 같이 가지뭐..."
"그래도 괜찮아? 어색할텐데..."
"뭐 내가 코가 없냐 눈이 없냐..."
웃었다... 그 애의 웃음...
그 애의 웃음을 보기 위해 난 그애를 만나는건지도 모른다...
너무나 아름다운 웃음... 너무나 순결한 웃음...
2층에 있는 그 찻집으로 들어갔다...
난 약간은 어색했으므로 입구에 서 있었다...
저 쪽에서 일어나서 입구를 바라보는 얼굴들 ...
약간은 눈에 익은 얼굴이다...
대부분이 상대앞 계단에서 본 얼굴이었다...
"거기 왜 그러고 섰니... 이리와라..."
5명...
의례적인 인사를 하고 앉았다...
이자리가 엄청난 자리가 될거라고는 상상도 못한채 나는 앉았다...
"제가 친구분들에게 차 한잔 대접해 드리죠... 마음대로 시키세요...
전 가진게 돈밖에 없어서..."
웃음소리가 들리고 진짜 그래도 되냐는 말에 그애는 ...
"오늘 돈 많단다... 시키자..."
"파르페 같은거 시키세요... 그게 제일 비싼거 아닙니까..."
다시 모두들 웃었다...
얘기가 진행되었다...
과 얘기들 나는 전혀 모르는 이야기...
누구와 누구는 어떻게 되서 바닷가에 갔다는둥...
누구는 누구를 어떻게 해서 어떻게 되었다는 남자가 듣기에는 다소 시시콜콜한 얘기들이
오갔다...
난 거의 벙어리 신세였다...
"저 담배를 피워도 괜찮을까요?"
괜찮다고 했다...
"담배 피는 사람 안좋아하지요?"
나의 이 말에 친구중 한명이 말했다...
"그럼요... MY도 안좋아해요..."
이런... 괜히 피웠나 보다...
드디어 나에게 질문이 쏟아졌다...
어떻게 만났느냐로부터 시작해서 어떤점이 좋으냐 하는등등의 질문...
난 이때까지 있은 일을 비교적 간단하게 대답했다...
어떤점이 좋으냐는 질문에 그 애는 나에게...
"진짜 나의 어떤점이 마음에 들어?"
하고 물었다...
너무나 대답하기 어려웠다...
"난 잘 웃는 사람이 좋아... 왜냐하면 난 그렇게 웃지 못하니깐..."
이 바보같은 대답에 한바탕의 웃음이 지나가고... 그애는 다시 말했다...
"그게 전부야... 대답이 너무 이상해..."
어디가 좋은지 나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대답해야하지... 그냥 좋은걸...
"난 널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 밥을 안먹어도 배가 부르고...
너의 웃는 모습이 너무나 좋아..."
나의 말에 앉아있던 모든 사람의 얼굴은 심각해졌다...
이상하다... 왜 이렇게 되지?
그때 그 애의 한 친구가 말했다...
"너무 혼자만의 감정인것 같지 않아요? 좋은 친구로 지내면 될텐데..."
너무나 나를 당황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이때까지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것을 생각나게 해 주었다...
그애가 말했다...
"그래 우린 친구인데... 너 이상하다..."
"난 솔직히 니가 참 좋아...
이때까지 다른 사람에게 느껴보지 못한 어떤 특별한 감정이 생겼어...
잠시라도 너를 안보면 너무 보고싶고 너와 영원히 떨어지고 싶지 않아...
난 태어나서 이렇게 용기를 내어본 적이 없어..."
다시 조용해 지는 주위... 달아오르는 나의 빰...
그만 일어나자는 누군가의 말에 나는 계산서를 집었고 그리고 계산을 했다...
밖으로 나왔다...
"오늘 일 너무 신경쓰지마..."
달아오른 내얼굴을 보고 그 애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난 아무렇지도 않아..."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친구 중 한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그길로 헤어졌다...
돌아오는 길에 후회를 많이 했다...
가지 말껄... 그냥 둘이서 딴곳에 갈껄...
그리고 그 친구들이 너무 미워졌다...
뭔가 모르는 불길한 예감...
이제까지 너무나 잘 맞아왔던 나의 불길한 예감들...
며칠후 나는 너무나 그 아가씨가 보고 싶어졌다...
거의 광기에 가까울 정도로 나는 그 아가씨의 얼굴을 기억해내려고 노력했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전화를 걸었다...
두번째 하는 전화였다...
이제까지는 헤어질때 꼭 만날 약속을 했으므로 전화는 필요치 않았다...
신호가 가고 누군가가 받았다...
혹시나 그애 아버지가 받을까봐 약간은 걱정이 되었다...
그애의 아버님은 엄격하시다는 말을 들었고 내가 전화해서 그 애가 집에서
곤란해지는것을 난 원치 않았다...
어느샌가 나는 그 애가 좋아하는 일은 나도 좋고, 그애가 기쁘면 나도 기뻤다...
동시에 그애가 싫어하고 기분이 나쁘면 나도 그게 싫었고 기분이 나빴다...
들려오는 음성...
그애라고 생각했지만 혹시나 몰라서 확인을 했다...
그애였다...
"잘있었니? 나야..."
"응 그래 왠일이니? "
약간은 차가운 말투... 다시 드는 불안한 예감...
"시간 있니? 한번 보자고..."
"나 일이 있어서 안되... 그리고..."
밀끝을 흐렸다...
"음 그래... 그러면 다음에 만나지 뭐... 다음에 전화할께..."
내말이 끝나기 무섭게...
전화선을 타고 약간은 나에게 충격적인 말이 흘러왔다...
"음... 있잖아... 이제 전화는 되도록이면 하지 말아줘...
혹시 아빠가 받을지도 모르고... 학교에서 볼수 있을거야... 잘있어..."
떨리는 그 아가씨의 말...
미안해 하는 감정을 떨리는 말로 짐작할수 있었다...
"그래 알았어... 니가 원한다면...잘있어..."
전화를 끊었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멍하게 그저 멍하게 있을뿐이었다...
그 날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1주일에 한번씩 만나던 그 애를 이젠 더이상 만날수가 없었다...
7번의 만남으로 나의 행복했던 순간들은 끝이 나고 마는가...
이제는 다시는 전화하지 않으리라...
여러날이 지나갔다...
시험을 그저 시험처럼 치고...
방학이 되었다...
내가 하는 일이란 고등학교때 친했던 친구들과 만나서 술을 마시는 일뿐이었다...
집에 와서는 밤새 천정을 향해 올라가며 춤추는 담배연기의 몸짓을 너무도 비참한 눈으로
지켜보는 것 뿐이었다...
꿈속에 그 아가씨가 나타났다...
너무도 아름다움 웃음을 지으면서 그 아가씨는 바다위를 혼자 배를 타고 나에게서
멀어졌다...
꿈속에서 마저 나는 잡으려 애썼지만 파도는 나의 얼굴에 부딪히는 것으로
나를 막았다...
집에서는 내가 자다가 헛소리를 하고 내 몸이 땀에 흠뻑 젖어 있다면서 여름에 몸이
허해졌다면서 약을 지어오셨다...
다행이 그 애를 부르지는 않았나 보다...
하긴 꿈속에서 그 아가씨의 이름을 불러본적은 없었다...
부르려고 애썼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방에 틀어박혀서 내내 생각만 했다...
왜 그러는걸까?
내가 뭘 잘못했었나?
내가 담배를 피기 때문이 아닐까...
그것때문이라면 안 필수도 있는데...
별의별 유치한 생각을 다 했다...
매일같이 너무도 보고 싶었다...
얼굴이 도무지 기억나질 않았다...
무엇인가 방해를 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내가 그 애의 얼굴을 볼수 있는것은 오직 꿈에서였다...
잠을 잤다...
하루종일 잠을 잤다...
혹시나 볼수 있을까 해서였다...
6번째 만날때의 일이 기억났다...
그날도 여느때와 다른없이 우린 만나서 얘길했다...
내가 문득 이런 얘길했다...
"우리 다음에 2학기때 같이 수업 들을래?"
그렇게 되면 정기적으로 또 필연적으로 만날수 있기때문이었다...
뭔가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한다고나 할까...
난 사실 이말을 하기까지 좀 많은 생각을 했다...
혹시 그 애가 다르게 생각하면 어떨까 해서이다...
생각에 잠기는 그 애...
난 초조했다...
입을 열었다...
"그러지 뭐... 다 들을수는 없고 한 두개만 같이 듣자..."
우와... 난 한개만 같이 들으려고 한건데 두개나...
"그럼 다음 수강신청때 신청표를 가지고 어디서 만나자"
"그래 그러지..."
쓴 웃음이 나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이제 아무 걱정이 없는줄 알았는데...
이렇게 될줄이야...
그 애 친구들 때문이야... 나쁜 인간들...
그 애 친구들에 대해서 분노를 느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했다...
딴 사람들이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뭔가 내가 잘못했을거야...
한달이 지났다...
전화하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수가 없었다...
전화해서 만나자고 하니 여전히 일이 있다는 핑계였다...
그 일이 있은 며칠후 학교에 갔다...
친구와 제도관앞에서 얘길하는데 저기서 너무나 그리운 얼굴이 보였다...
점점 더 또렷하게 들어오는 얼굴... 눈이 마주쳤다...
"안녕..."
그애가 먼저 나에게 인사했다...
"안녕..."
똑같은 말밖에 할말이 없었다...
그리고는 지나쳐 갔다...
그 애가 미웠는데...
그 애의 얼굴이 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왜 온몸이 굳어버리는 것일까...
그 이후로 여러번의 전화를 걸었다...
시간은 어느덧 가을을 넘어 초겨울이 되고 있었다...
몇번의 전화와 만남의 시도가 다 좌절되었다...
항상 그 애에게 전화할때 손은 떨렸고 불안했다...
그러나 가슴 한곳에는 '오늘은 잘될거야' 하는 희망도 없지 않았다...
그 희망은 번번히 좌절되고 말았지만...
다시 한번 전화를 걸었다... 그애가 받았다...
일상적인 인사후에 나는 말을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 애의 음성이 내귀에 들어왔다...
"토요일 A찻집에서 만나... 할 말이 있어..."
시간을 정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육감적으로 두가지의 짐작이 나의 머리속에 떠올랐다...
하나는 희망적인 짐작이고 또하나는 너무나 슬픈 짐작이었다...
희망적인 짐작이 너무나 바보같은 생각이란걸 난 잘 알고 있었다...
그 애의 과 선배로부터 그 애가 과에서 맡고 있던 일을 그만두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 애가 지금 힘들어 하는것 같다는 말도 같이 들었다...
난 그 애를 위해서 무엇인가 해주고 싶었고...
이번에 만남을 통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 싶었다...
드디어 토요일이 되었다...
난 15분전에 그 장소에 도착했다...
그 애가 올때까지 난 3개피의 담배를 피웠다...
이 찻집은 우리가 처음 만나서 온 그 찻집이었다...
약속시간에서 1분전쯤 그 애는 문을 밀고 들어왔다...
웃으면서 나에게 인사하고는 마실것을 주문했다...
난 여전히 체리쥬스를 시켰다...
"아직도 체리쥬스니?"
그 애가 흐릿한 웃음으로 말했다...
"난 언제나 체리쥬스야..."
침묵이 흘렀다...
누구도 먼저 말하지 않았다...
나의 주머니속에는 언제가 나에게 중요한 누군가에게 줄 목걸이 시계가 들어있었다..
그 목걸이 시계는 내 팔목에 있는 시계와 같은 회사에서 생산된 한 쌍이었다...
내 팔목에 있는건 남자용이고 목걸이 시계는 여자용으로 장식이 예쁜 시계였다...
난 계속해서 주머니속의 시계를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무엇인가 결심한듯 그 애가 입을 열었다...
"내가 먼저 말을 할께..."
약간은 굳은 표정으로 그 애의 입에서는 계속해서 말이 흘러나왔다...
"너도 짐작은 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해... 음..."
약간은 주저하면서 그러나 또렷하게 그 아가씨는 말을 이어나갔다...
"너무 일방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니? 난 어떤 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은데...
난 널 항상 친구로 생각하고 있었어...
용기있는 친구...
나 너만큼 용기 있는 애를 본적이 없어...
소설속에만 있다고 생각했지...
너의 그런 감정 너무 부담스러워..."
내가 말을 가로막았다...
더이상 듣는다면 어쩌면 더 여기 있지 못할거라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난 주머니 속에서 목걸이 시계를 만지고 있던 손을 뺐다...
"난 널 진정으로 좋아하고 있어...
남자가 아닌 여자에게 이런 감정을 느껴본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야...
너만 보고 있으면 난 아무것도 없어도 정말 행복해. 유치하다고 생각해도 좋아...
하지만 중요한것은 너무나 널 좋아하고 있다는거야...
이미 돌이킬수 없을만큼...
내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니? 잘못된것이 있다면 고칠수 있어...
뭐가 잘못된 거지?"
담배를 손에 쥐었다...
오늘만큼은 절대 담배를 피지 않으리라 결심했는데 그 결심은 여지 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니가 잘못한것은 없어... 잘못이 있다면 내가 잘못이겠지...
나 정말 못된 애지? 우리과 애가 그랬어.
오늘 가서 다른 사람 사귀는 사람이 있다고 말하라고..
그리고 아주 냉정하게 말하라고...
그러나 나 그런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아...
우리과 애들은 거의 모두 이런 사실을 알고 있어...
사람이 작으니 작은 일도 금방 알게 되지...
우리과 3명밖에 안되는 남자애들중 하나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어...
나보고 정말 나쁜 애라고..
그 애라면 그렇게 용기있게 다가온 사람한테 그렇게 하지 않을거라고...
자긴 그럴 용기도 없고 너 같은 사람을 존경한데..
나도 너의 용기에 정말 대단한 호감을 느꼈어...
근데 중요한건 나에게는 니가 나한테 느끼는 그런 감정이 아직 없다는거야...
넌 나를 자꾸 보고 싶다고 그러지만 난 아직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아...
미안해...
더 이상 말한다는건 널 너무 비참하게 만드는 것 같아...
날 더이상 나쁜애로 만들지 말아줘..."
말소리는 떨렸지만 전달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럼 이제 우리는 다시 못만나게 되는거니? "
"학교에서 만나면 인사는 하고 지내자...
하지만 전같은 식으로 약속을 해서 만난다는건 어려울거야...
너한테는 정말 미안해...
나보다 나은 다른 사람도 많아...
너만한 용기라면 누구라도 사귈수 있을거야...
나를 생각하지 말고 다른 일에 눈을 돌려봐...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나한테 보여준 그런 관심과 친절함을 보여줘...
그러면 나같은건 저절로 잊혀질거야... "
"물론 사람은 많아...
하지만 ... 하지만...
넌 이세상에 너 하나밖이야... 난 다른 사람은 필요없어...
난 너에게 용기를 냈고 너를 좋아할 뿐이야...
너외에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건 있을수 없어..."
놀란듯한 얼굴 더욱 커지는 그 아가씨의 눈...
"내가 할말은 다 했어...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말이 없어...
이번일로 니가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해...
시간이 지나면 잊을수 있을거야...
그동안 나를 생각해주고 나에게 보여준 친절은 안 잊을께...
그만 일어나자..."
나의 입에서는 체념의 말밖에 흘러나올수 없었다...
"알았어... 니가 그렇다면 어쩔수 없지...
그렇지만 내가 누구보다도 널 좋아했다는건 잊지 말아줘...
그리고 너와 함께 지낸 시간이 언때보다도 행복했다는것도..
마지막으로 악수나 하고 헤어지자..."
이말을 하기가 그렇게 싫었지만... 할수밖에 없었던건... 그건...
내가 정말로 그 애를 좋아했고 그 애가 싫어하는 일을 내가 할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냥 헤어지는게 좋겠어... 그럼 나가자... 계산은 내가 할께..."
악수를 거절하고는 전표를 들고는 카운터에 가서 계산을 했다...
난 찻집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이곳에서 만났던 것처럼 그 애는 나오면서 성냥을 들고 나와서는 나에게 주었다.
그리고는 계단을 내려갔다...
"잘지내라..."
나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나는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
그저 주머니속에 오늘 주려고 가져왔던 목걸이 시계만을 꽉 쥐고 있을뿐이었다...
그 애는 나를 한번 보고는 많은 사람들 사이를 뛰어서 갔다...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사람들속으로 너무나 빨리 사라져갔다...
나도 돌아섰다...
어디로 갈지 너무나 막막했다...
방향도 없이 걸었다...
사람이 슬프다는게 이런 것일까...
이제는 다시는 아무도 좋아할수 없을것 같았다...
학교로 올라갔다...
사회대앞 잔뒤밭 벤치에 앉았다...
이곳에 앉아서 그 아가씨가 내려오길 기다리던 생각이 났다...
그 땐 얼굴만 한번봐도 하루종일 기분이 좋았는데...
그냥 그렇게 바라보고만 있을걸...
멀리서 그저 바라볼수만 있어도 되는데...
담배를 얼마나 피웠는지 모르지만 어느새 담배갑에는 담배가 하나도 없었다...
'부담스럽다' 무슨 말일까?
무엇때문에 부담스러웠을까...
난 그애에게 아무것도 요구한게 없는데...
잘해주려고 너무나 애썼는데...
부담스럽다는 말을 뜻을 도저히 알길이 없었다...
집에 박혀서 그말만을 생각했다...
내가 아는 모든 여자에게 그 말이 무슨뜻인가를 물어보았다...
대답은 너무나 가지가지였고 나에게 어떤 위안도 줄수 없었다...
세상이 끝나면 이런 기분일까?
거의 매일같이 학교를 나왔다...
방학이라서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로 오는것이었다...
며칠째 그 기대가 허물어지고 학교앞 현란한 조명의 거리를 걷고 있을 때 문득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나의 어깨를 두드린건 그 아가씨의 과선배이자 우리 동문의 선배인 MK선배였다..
얼마전 나에게 그 애가 과에서 맡았던 일을 그만두었다고 전해준 그 선배였다...
"왜 그렇게 멍청하게 돌아다니고 있니? 꼭 술취한 사람처럼.."
알수없다는듯한 눈으로 날 쳐다보며 그 선배가 말했다...
"술취한 사람요? 말 나온김에 누나 우리 어디가서 한잔 하지 않을래요?"
"내가 너랑 술마셔서 무슨 비전이 있겠니?
아서라...
거리를 방황하지 말고 빨랑 집에나 들어가라...
그 담배좀 끄고... 요새 청소년 흡연이 심각해..."
그리고는 나에게 가벼운 인사를 하고는 돌아서 가려고 했다...
돌아서는 그 선배에게 나는 말했다...
"누나 MY가... 과에서 맡은 일을 그만뒀다죠?"
돌아서서 가려는 선배는 그 말을 듣고는 정지해서 다시 나를 돌아보았다...
"너 MY랑 무슨일 있니...?"
우리보다 1년을 더 학교에서 보낸 경험에서 오는 예리한 추리감각이었다...
나는 대답을 대신해 씁쓸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하늘을 향해 담배 연기를 날려보냈다...
"맞구나... 어쩐지 걔 행동도 좀 이상하다 싶었어...
으이구 화상... 따라와.."
그 선배와 나는 M호프집으로 갔다...
천정이 내 머리에 부딪힐듯한 그런 간이 이층의 자리에 우리는 앉았다...
간단한 주문을 하고 그 선배가 말을 꺼냈다...
"이것 저것 말하지 말고 간단히 무슨일이 있었는지 말해봐..."
난 다시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 애에게서 그렇게 멀어진 후로 나의 입은 거의 항상 담배를 물고 있었다...
담배만이 나의 유일한 낙이었다...
"MY가 내가 부담스럽데요...
근데 멍청하게 난 그말이 아직 무슨 뜻인줄 몰라요...
그리고 이젠 자의로 만나지는 않을건가 봐요...
난 정말 좋아했는데...
뭐가 문제인줄 모르겠어요...
혹시 저때문에 과에서 그애의 입장이 난처해졌나요?
저 때문에 과에서 하는 일을 그만두게 되었나요? "
나의 질문에 선배는 말했다...
"걔가 과 일에 좀 힘들었나봐...
그런데 너도 그 애의 마음을 부담스럽게 하니깐 그래서 그런 복합적 이유로 그 일을
그만두게 되었겠지...
근데 특별히 너때문은 아닌것 같아...
그리고 과의 인원이 작으니깐 개인의 일이라도 금방 소문이 나!!
입방아 찧기 좋아하는 과잖아...
여자들이 거의 대부분이고 하니깐..."
나는 두번에 나누어 500을 마시고 다시 500을 시켰다...
"누나... 난 그앨 정말 좋아해요...
만약 나 때문에 걔가 기분이 나빴다면...
그 자체가 정말 나를 우울하게 만들어요...
나 그애가 웃을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수 있어요...
그 애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서 웃을수 있다면 난 그걸 지켜보는것 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어요...
물론 내가 그 역할을 하고 싶은 생각은 굴뚝 같지만요... "
선배의 얼굴이 약간 측은한 표정으로 바뀌면서...
"난 정말 너희들이 잘 되었으면 하는데...
난 걔를 이해를 못할것 같아...
니가 걔한테 잘해주는게 어느정도 부담이 된다면 걔도 너한테 잘해주면 되잖아...
너무나 복에 겨운 얘야...
어쩌면 멍청한 애일지도..."
"걔에 대해서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갠 정말 착한 애예요...
잘못한건 저예요...
마지막으로 만날때 그앤 나한테 친구가 거짓말을 해서 나를 떼 놓으라고 했지만 그 얘는
그러지 않고 그 사실을 나한테 말해줬어요...
유치하게 보일지 몰라도 그 얘에 대해서 그렇게 말하는건 참을수 없어요..."
말이 끝나고 나의 잔은 다시 비워졌다...
"미안해요... 화낼려고 그런건 아니었어요...
누나말에 약간 흥분한것 같아요... 누나 나 더마셔도 되지요?"
"내가 미안해...
더 마셔도 되지 내가 집에 걸어가는 한이 있어도 술값은 내마...
너 정말 그애를 좋아하고 있구나...
좋아하는걸 넘은것 같아...
그렇지만..."
선배의 말끝이 흐려졌다...
그 다음 말이 어떤 것인지는 취중에서도 짐작할수 있었다...
선배의 말이 이어졌다...
"남녀관계란 알수 없는거야...
니가 그애를 좋아하고 그애에게 잘해준다고 해서 그애가 너를 좋아하고 너에게 다가와야
한다고 생각하면 안되...
물론 니가 그애를 지켜보는것 만으로도 만족한다고 하지만 너의 진심은 그게 아니지...
내가 너에게 해줄수 있는 말은 일방적인것은 위험하다는 거야...
그리고... 음...
그리고 그 앨 잊어봐...
딴일을 찾아봐...
시쳇말로 널린게 여잔데...
다른 사람을 찾아봐도 되잖아... 그렇게 해봐..."
"나에겐 그애 밖에 없어요...
그 애 외에 다른 어떤 사람도 난 필요없어요...
왜냐구요? 그애처럼 그렇게 맑은 웃음으로 나의 주변에 온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애에게서 느낀 그런 편안함을 난 딴사람에게 느낄수 없어요..."
"에고... 이렇게 보면 너희들이 잘되었으면 좋겠는데 ...
편지를 한번 해보지 그래...
그러면 만나지 않고도 다시 가까워질수 있잖아..."
"안되요... 그애가 나의 편지를 받고 기분이 언짢해지거나 그 편지를 걔 동기들이 발견하면
그애가 다시 곤란해질지 몰라요...
난 그애가 싫어하는 일은 할수 없어요...
그럼 나도 기분이 나쁘니깐요..."
"내가 아는 선배가 있는데 그사람은 군에 가기전에 좋아했다가 차인 여자를 못잊어서 군대
갔다온 지금도 궁상맞게 그 여자를 그리워하고 있더라...
너도 그사람처럼 될까 걱정이다..."
우리의 대화속에서도 담배연기는 쉴새없이 피어오르고 미친듯이 춤을 추고 있었다...
방학이 끝나고 개강을 하였다...
2학년이 되어서 1학년과는 다른 공부의 질때문에 난 그 앨 생각할만한 여유가 없었고 새로
들어온 후배들과의 어울림속에서 바쁜 나날이었다...
그러나 항상 병처럼 그 애에 대한 그리움은 도졌고 힘들때 생각나는 사람은 단지 그애
하나였다...
그 애 주위의 사람들에게서 그 애의 근황에 대해서 대부분 알고 있었고 가끔씩 먼 발치에서
보일 때도 있었다...
그 때마다 나의 심장은 두뇌의 명령을 무시한채 마음대로 놀았다...
하지만 다가갈수 없었다...
2학년이 되어서 거의 규칙적이다시피한 식사시간과 수업시간의 연속이었다...
저녁을 먹고 거의 항상 같은 시간에 도사관에 앉고 규칙적으로 담배를 피고 담배를
필때마다 머리속엔 그 애 생각으로 가득했다...
햇빛이 따가우리만큼 따뜻한 봄의 어느 날이었다...
점심멤버들과 밥을 먹기 위해 언제나처럼 그 시간에 정문을 향해 가고 있었다...
요즘 상영하는 영화얘기를 나누면서 걷던중에 앞에서 보이는 M자의 머리핀...
자기의 이니셜처럼 머리에 꽂고 다니던 그애의 M자 머리핀이었다...
혹시나 하고 본 그 머리핀의 주인공도 바로 그애...
이런 젠장... 이놈이 가슴은 이런 순간에 항상 제멋대로지...
나의 시선은 고정되었고 얘기를 나누던 우리 멤버들은 이상한듯이 나를 쳐다보다 나의
시선을 따라 그 애를 보았다...
그중에는 JS도 끼어있었다...
JS가 말했다...
"어 저애... 걔잖아..."
우리의 걸음이 훨씬 빨랐으므로 정문을 약간 지나서 그 애와 마주치게 되었다...
눈이 마주치고 걸음이 멈춰졌다...
나도 모르게 그 애의 이름을 큰소리로 불렀다...
더욱 커지는 그애의 너무나 맑은 방울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는지 그 아가씨는 연신 가슴에 손을 얹는다...
그런 모습에 내가 물었다...
"왜 그렇게 놀라니?"
"내가 너한테 지은죄가 많아서 그런가 보다..."
알수 없는 이 한마디...
나와 우리과 사람들은 그 애을 지나쳐서 걸어가면서 계속 영화 이야기를 했다...
그 영화는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1001번째 프로포즈였다...
내 옆에 있던 MH는 같이 보러가자고 나에게 말하였다...
이 말에 나는...
"남자끼리 그런 영화를 칙칙하게 보러가냐...여자랑 같이 가면 몰라도..."
그리곤 돌아서서 MY에게 말하였다...
"MY야 영화보러 갈래..?"
나는 무심코 농담삼아 그애에게 말을 걸어보기 위해서 물었다...
물론 거절의 말이 나올것이라고 예상하면서...
그러나 그 애의 말은...
"보여줄래?"
라는 말이였다...
"그럼 보여주지... 가진게 돈밖에 없는 사람한테 왜이러니...."
웃었다...
실로 몇달만에 보는 그 애의 웃음이었다...
난 그 다음날 아침에 그 애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집으로 전화를 거는것 또한 몇달만의 일이었다...
전화기의 숫자 버튼을 누르는 나의 손은 매우 떨렸다...
신호가 가고 전화를 받은건 다행히 그애였다...
"MY니? 나야..."
"응.. 왠일이니?"
약간은 의외라는 듯이 나의 말을 받았다...
"내가 어제 영화보여준다고 했잖아... 난 거짓말을 잘 안하거든..."
"아 그얘기... 난 그냥 농담이었는데..."
"그랬니? 난 보여주려고 했는데... 일이 있나 보구나... 그럼 할수 없지..."
난 전처럼 일이 있다는 핑계로 나의 제의를 거절할거라고 생각하고는 미리 그렇게
말하였다...
그러나 대답은 의외였다...
"뭐 보여준다는데... 그럼 보러가지뭐... 어느 극장에서 하는데?"
이렇게 기쁠수가...
난 재빨리 어느 극장에서 몇시에 한다고 말해주고는 몇시에 어디에서 만나는게 어떻냐고
제의하였다...
그 애는 그러자고 승락하였고 난 약간은 안 믿겼지만 약속을 확실히 하고는 메모를
하였다...
전화를 끊고는 실감이 나지않았다...
혹시 꿈일까? 드라마에 나오는것처럼 내 얼굴을 꼬집어보기까지 했다...
꿈은 아니었다...
난 여러군데에 메모를 했다...
혹시나 잊어버릴까 해서였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내가 제일 먼저 한일은 메모를 찾아보는일이었다...
그리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내가 그렇게 메모를 하는 이유는 전에 그 애의 꿈을 꾸었을때 그 꿈이 너무도 생생하여
하마트면 그 애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서 꿈의 상황처럼 얘기할뻔 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약속한 날까지는 사흘이나 남아있었다...
평소 그렇게 잘가던 시간이 너무도 더디게 간다...
기다리는 3일동안 내가 하는 일은 너무나 잘되었다...
당구를 쳐서 한번도 패배한적이 없었고 오락실에서의 농구게임은 너무나 슛이 정확하게
들어갔다...
아침에 일어나서 꿈이 아니었다는걸 확인하는 절차를 3일이나 한 이후 비로소 그날이
되었다...
내가 이렇게 희망과 기대에 가듣찬 이유는 그애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나한테 지은죄가 많아서 놀랬다는 그애의 말...
부담스럽다는 말 이후로 나에게 있어서 가장 신중하게 해석해야 할 말이었다...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한다면 전에 너에게 한 행동은 나의 잘못이었으니 이제 용서를 받고
싶다라고 내마음대로 해석할수도 있었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저번에 그렇게 너를
가슴아프게 한데 대해서 미안한 감정때문에 지은 죄가 많다고 해석할수도 있었다...
언제가 어느 선배가 나에게 여자들은 시간이 지나서 자기를 좋아해주고 잘해주는 남자는
자기가 차 버린 남자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하여간 그 말로 나의 머리는 상당히 복잡해졌었다...
그렇지만 여러사람에게 의견을 물어보고 내 나름대로 생각해본 결론은...
그애가 나한테 최소한 그때의 일에 대해서 미안해 하는 입장이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 기회로 그 애의 관계를 다시 정상화 할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제까지 그애와는 너무나 불편하게 지내왔던게 사실이었다...
약속한 날은 토요일이었다...
오래간만에 나는 아주 상쾌하게 일어났다...
하늘은 잔뜩 흐려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일기예보에서는 오후에 비가 올거라고 하였다...
옷장에서 거의 모든 옷을 꺼내어서 웃옷과 바지를 조합해보고는 입고나갈 옷을
결정하였다...
그리고 평소에 거의 안하던 빗질도 무려 20분이나 하고 그리고 신발을 고르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집을 나가기까지 준비하는데 걸린 시간은 거의 1시간 반이었다...
내가 학교갈때 준비시간 10분안쪽인걸 생각하면 이 만남이 나에게 차지하는 비중을
짐작하고 남으리라...
약속시간 2시간전 버스를 탔다...
약속장소에 도착했을때 1시간전이었다...
난 일단 표를 먼저 샀다...
줄을 약간 서서 표를 사고도 40분이 남았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영화본 이후의 이동경로를 탐색하였다...
약속시간 15분전쯤 나는 약속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5분이 지나고 또 10분이 지나고... 15분이 지나 약속시간이 되었는데도 그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앗 나의 시계가 잘못되었나?'
옆에 있던 사람에게 시간을 물어보았다...
그 사람은 시간을 가르쳐 주면서 시계가 있으면서 시간을 왜 물어보냐는 듯한 눈으로 날
쳐다 보았다...
내 시계는 정확했다...
그럴수 밖에 없는데 아침에 TV를 보면서 다시 시계를 맞췄기 때문이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였다...
시간은 흘러 약속시간에서 7분쯤 지났다...
난 슬슬 불안한 에감이 들었다...
항상 약속시간 1분전쯤에 나타나던 애가 7분이나 늦을리 없었기 때문이다...
'않나오는가 보다... 하긴... 나한테 냉정하게 안된다라고 말할수 없었겠지...
심청이만큼 착해서 탈이야...
그래서 내가 좋아하지만...'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는 멍하게 있는데...
내 눈앞에서 하얀바탕에 검은 줄무늬의 티를 입은 머리긴 사람이 내 이름을 부르는게
아닌가...
바로 그 애였다...
공자님 감사합니다...
난 가까이 다가가서 그 애와 인사를 나누었고 그애는 차가 막혀서 늦었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하였다...
우린 나란히 서서 걸었다...
걸으면서 많이 기다렸니하는 물음에 난 3분전에 왔다고 대답했다...
영화관이 있는 거리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팔짱을 끼고 걷는 사람들 손을 꼭 쥐고 걷는 사람들 어깨를 걸치고 걷는 사람들 여러 가지
모양의 사람들로 거리는 북적거렸다...
손에 고구마 튀김을 들고 다니는 아가씨들도 많았다...
"너 고구마 튀김 먹을래?"
이렇게 묻자 그 아가씨는 ...
"아니... 괜찮아... 음 그것보다도 너 배안고프니? 뭐 먹으러 가자..."
아마도 점심을 먹지 않은것 같았다...
"그래 그러자...어디로 가지..."
마치 눈앞에 롯데리아가 있었다...
"롯데리아로 가자... "
내가 말하려고 하던 참에 그 아가씨가 먼저 말해버린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엄마와 애들 그리고 연인들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점거하고 있었다...
겨우 구석에 자리를 하나 잡았다...
"너 뭐 먹을래?"
나보다 그 애가 먼저 물었다...
"음 난 아무거나 먹지 뭐..."
나의 말에 ...
"음 그럼 우리 불고기 버거 먹자.. 그게 배가 찰것 같아..."
"그러지 뭐..."
말을 끝내고 일어섰다... 그 애도 같이 일어섰다...
주문대로 가서 주문을 했다...
잠시후 주먹만한 햄버거가 나오고 옆에 음료수가 놓여지고 그 옆에 감자튀김이 줄줄이
놓여졌다...
내가 지갑에서 돈을 꺼내자 그 애는 말리면서 자기가 가진 깜찍한 지갑에서 만원짜리
한장을 꺼내 주문을 했다...
"내가 낼건데..."
"아니야 영화는 니가 보여주니깐 이정도는 내가 사야지..."
이 대목 또한 중요한 해석 부분으로 남게되었다...
판을 들고 자리로 와서 앉았다...
입을 크게 벌리고 햄버거를 먹는 그 아가씨의 모습을 본적은 처음이었다...
입을 벌릴때마다 눈도 따라서 커졌다...
오늘은 꼭 이 얼굴을 내 기억속에 넣어가리라...
항상 이 얼굴을 기억하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쏟았건만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 아픔을
수도 없이 겪었다...
한참을 먹다가 누군가 자기를 지켜보는걸 알아차린 그애는 나를 보면 말한다...
"왜 안먹니? 햄버거 먹는거 처음 보니?"
하고 약간은 부끄러운듯이 묻는다..
"응...처음봐.."
너무나 무뚝뚝하게 대답한 내말에 그냥 웃음을 터뜨린다...
"니가 햄버거 먹는 모습은 처음이야...
배가 많이 고팠나 보구나... 햄버거를 너무 맛있게 먹는것 같아..."
주 메뉴인 햄버거를 다 먹고 우린 감자체제로 들어갔다...
감자 튀김을 케찹에 찍어 먹으면서 집 애기 학교애기 친구 애기 많은 얘기를 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우리들 얘기는 하지 못했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아직도 내 머리속에는 그 옛날 나에게 말하던 부담스럽다는 말이 생생했기 때문이다.
영화 시간이 다 되었다...
우린 그 옆에 있는 영화관으로 제목도 거창한 '1001번째 프로포즈'를 보러갔다...
영화관 역시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
"잠깐 이것좀 들고 있을래..."
나에게 백을 맡기고는 화장실로 간다...
아마 복도에서 남자들이 피는 담배연기를 참기 힘들었나 보았다...
난 기다리는 동안 극장 매점에서 간단한 먹을것을 샀다...
그 애가 돌아오고 우린 영화관 안으로 들어갔다...
난 들어가면서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자리가 앞뒤로 연속된 자리가 아니길...'
다행히 나란히 앉는 자리였다....
영화 상영까지는 아직도 10여분... 머거본 땅콩이 생각나는 시간 ...
우린 그냥 꼬깔콘으로 머거본 땅콩을 대신하고 있었다...
광고가 시작되었다...
수종이의 비듬치료제가 선전되고 이영화 주인공인 희애의 새척제가 선전되고...
계속 광고에 눈을 고정시키고 보고 있었다...
물론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가끔식 보면서...
광고가 오래계속되었다...
다섯번째 광고에서 샤워물줄기가 나오고 여자의 다리로 보이는 허벅지에서 발끝까지
다리가 나오는 광고가 시작되었다...
여성들의 청결을 위해서는 꼭 자기 제품을 쓰라나 마라나....
다음 광고역시 나에겐 별로 필요치 않은 광고였다...
편안한 밤을 보내기 위해서 자기 제품을 사용하면 여성들은 안심하고 잘수 있다나
뭐라나...
흡수력이 좋으니깐 절대 안심하라고 떠들어댔다...
지하철광고에서 익히 보고 들은 광고들이었다..
옆을 보았을때 그 아가씨도 나를 보았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넌 너하고 상관도 없는 광고를 참 유심히 보는구나..."
"음 그게 아니고 여성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심히 봐둘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해서"
다시 웃었다...
"근데 너하고는 상관이 있는 광고인데 넌 왜 안보니?"
너무나 엉뚱한 질문인지 웃기부터 한다 그러고는 하는말...
"난 저런거 안봐도 다 알아서 한다..."
음 그렇군...
광고가 다 끝나고 영화가 시작된다...
안경을 끼고 멍청하게 생긴 남자 주인공이 선을 보고 있다...
그 앞의 아가씨 또한 신통치 않게 보인다...
이내 아가씨가 이상한 변명을 대고 나가 버린다...
내 친구들 중에 미팅 나가서 저렇게 당하고 오는 애들이 많던데...
100번째인가 하는 선이 좌절되고 집에 돌아와서 하는 말이 나 이제 선 안봐...
동생이 고모가 또 한 아가씨 마련했다고 하니깐 당장 달려 나간다...
그 선의 주인공이 바로 희애였다...
남자 주인공은 자기에게 이런 아가씨가 올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은채...
희애를 보고 놀란다...
난 속으로 생각했다...
'짜식 우리 MY보면 기절하겠군...
아무리 봐도 희애보다 우리 MY가 훨씬 나은데...
왜 우리 MY는 영화배우가 아닐까???'
웃음과 감동으로 영화는 끝이 나고... 우린 일어섰다...
내가 영화에서 느낀건 '이건 완전 내 애기다...'였다...
이 영화의 결말은 해피 엔딩이었으니깐...
갑자기 희망이 솟는다...
"빨리 가자..."
공상에 젖어있는 내 옷을 잡아당기며 그 애가 재촉한다...
영화관 밖으로 나왔다...
밖은 약간 어두워 있었다...
어두워야 분위기가 나지...
난 아까 미리 보아둔 이동 경로를 속으로 생각하면서...
"MY야 이제 어디 갈까? XX에 갈래?"
나의 말에 MY는 약간 망설이더니 말했다...
"이만 집에 가봐야겠어... 집이 먼거 너도 알잖아..."
이게 왠 청천 벽력 같은 소리냐...
나의 지갑엔 오늘 아침 신권으로 찾은 세종 할배가 아직 4분이나 계신데...
이대로 보낼순 없다...
"뭐 벌써?"
"이른것 같아도 집까지 가자면 시간이 많이 걸릴꺼야..."
내가 봐둔 이동코스들이 하나둘 머리속에 지나갔다...
"좀 더 있어도 집엔 그리 늦지 않을거야... 커피마시지 않을래?"
"미안... 정말 가봐야겠어..."
벌써 집으로 갈것으로 마음을 굳힌것 같다...
"그래 그럼 집까지 바래다 줄께..."
"아냐 우리집은 남구고 너희집은 북구인데 우리집까지 날 바래다 주면 넌 아마 엄청나게
늦게 집에 갈걸?
고맙지만 힘들거야..."
"괜찮은데... 그럼 버스 정류장까지 바래다 줄께..."
버스 정류장에 갔다...
비가 한 두방울 내리기 시작했고...그녀는 우산을 펴 들었다...
전체적인 빨간색에 아름다운 무늬가 있는 우산...
쉘부르의 우산을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이우산보다 예쁜 우산은 아니리라...
버스 정류장에서 무언가 중대한 얘기를 꺼내기로 나는 결심했다...
그리고 나직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my야... 저기 있잖아 ..."
"응? 아 고마워... 버스가 오는구나 난 못보고 있었는데..."
이런 제길... 하필 지금 버스가 오다니 버스 온다고 말하려는게 아니었는데...
"그래 버스 오는데 넌 못 보고 있길래 버스 왔다고 말하려고 했어..."
그녀는 버스에 올라탔고 맨뒤에 앉았다...
버스가 출발하고 그녀는 나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고 나 또한 손을 흔들었다...
그것이 마직막 흔드는 손이라는걸 알지도 못하고 멍청하게...
이후로 몇번 그녀의 집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걸때마다 부담스러워 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드디더 난 결론을 내릴 시간이 임박했음을 깨달았다...
라디오에서는 피노키오의 <사랑과 우정사이>가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친구도 아니고 연인도 아닌 어색한 이런 사이는 난 정말 참을수 없었다...
그녀와 함께 보냈던 짧은 시간들...
노래가사에서는 짧아도 미련은 없다지만 난 너무나 미련이 많았다...
몇일동안 내방에서는 담배가 끊임없이 피어 올랐고...
쉽게 결론은 나지 않았다...
마지막 방법을 써야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난 그 결심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결심의 실행은 쉽지 않았다...
그냥 잊기로 했다...
잊혀지지 않지만 잊은걸로 생각하자...
학교를 마치고 난 어느 중공업 회사에 특례보충역으로 입사했고...
3년간의 의무를 마치고 다른 기업체에 입사했다...
그 회사에서 난 어느 아가씨와 알게 되었고 결혼을 전제로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
내 나이가 이미 서른에 다가가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 만난 이 아가씨와의 결혼은 거의
확정적이었다...
사촌 누나 딸이 벌써 중학교 2학년이 되어 수학여행을 다녀왔단다...
조카랑 나는 아주 친했다...
수학여행 다녀와서 몇일 후에 난 그녀석과 같이 바닷가에 놀러 갔다...
차안에서 그 녀석은 자기 담임 선생님 얘길 했다...
"우리 담임 선생님 참 예쁜데 우리 숙모가 되었으면 좋겠더라... "
"짜식이 그럼 삼촌한테 빨리 소개 시켜 줘야지 임마..."
나의 농담에 그녀석은 정색을 하면서...
"삼촌은 애인 있잖아... 접때 온 그 언니 말이야..."
난 그냥 웃었다...
"삼촌, 수학여행갔을때 찍은 사진 한번 볼래? 속리산 가서 찍은거야..."
바닷가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먹으면서 조카 녀석은 나에게 수학 여행때 찍은 사진을 내
보이는 것이었다...
밤톨만한 그녀석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이내 그 녀석이 자랑하는 담임선생의 얼굴로
시선이 갔다...
첫사진에서 많이 본 얼굴이라는 느낌을 받았고 그 다음 적은수의 아이들과 담임선생이
찍은 사진을 보는 순간 너무나 놀랬다...
이럴수가...
"너희 선생님 이름이 어떻게 되는데?"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난 조카에게 물었다...
조카에게서 그 이름을 듣고 기막힌 운명에 말문이 막혔다...
그녀가 조카의 담임이라니...
조카는 계속 쫑알거렸다....
"전에 비올때 우리 선생님이 대학 다닐때 자기 사랑얘기 했줬는데...
그 남자가 자기를 엄청나게 위해 줬는데 그때는 잘 몰랐데...
지금 후회하고 있지만 그 사람이 어디 있는지 모른데...
한번 다시 만나봤으면 좋겠다던데...
우리 반애들은 비만 오면 그 얘기 해달라고 조르거든...
그 남자 얼굴이 참 검었데..
그 말 들을때 삼촌 생각 나더라 삼촌은 완전 아프리칸이잖아... 헤헤 "
연신 웃으면서 얘길 하는 그 녀석과 반대로 내 얼굴은 상당히 굳어 있었고...
나의 굳은 표정을 보고 그 녀석은 걱정스러운듯...
"삼촌 어디 아파?... 표정이 이상하다..."
"응? 아니 그냥 좀 머리가 아파서.. 괜찮아.."
"안 괜찮은것 같은데 이마에 땀도 나고..."
왜이리 땀이 나는걸까?
처음 그녀와 만났을때도 이렇게 땀이 났는데...
"너 있잖아.. 너희 선생님 결혼했냐?"
"그건 왜 물어? 삼촌 진짜 우리 선생님한테 관심있나보다...
하긴 우린 선생님 예쁘긴 참 예쁘지...
하지만 아직 노처녀야...
우리가 왜 아직 결혼안하냐고 물으니깐 그때 그 사람 생각나서 결혼 안했다고 농담처럼
얘기하던데..."
며칠후 난 조카 녀석 중학교에 전화를 걸어서 조카 담임선생님을 찾았고...
조카 문제로 한번 만나 뵙고 싶다고 말했더니 그녀는 그러자고 했다...
며칠동안 고민을 하면서 겨우 건 전화였다...
약속장소에서 10분쯤 기다리고 있으려니깐 방송으로 그녀는 내 조카 이름을 대며 나를
찾았다...
내이름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조카의 삼촌이 나임을 모르고 있으리라..
난 종업원에게 방금 방송한 여자분을 안내해 달라고 부탁했고 그녀는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서서히 올라왔다...
오 이럴수가... 전과 하나도 변하지 않은 그 모습...
자리에 앉아서 그녀와 난 인사를 나누었다...
내 이름은 계속 밝히지 않았던 상태여서 그런지 그녀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내가 체리쥬스를 시키자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녀도 체리 쥬스를 시켰다.
"저 혹시 저 모르시겠습니까?"
나의 황당한 질문에 그녀는 큰눈을 더욱 동그랗게 뜨고는...
"예? 00삼촌 아니세요?"
"예 전 00삼촌입니다만... 전 선생님을 아는데..."
갑자기 놀라는 그녀의 모습...
"아니, 혹시 ..."
놀라움에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고 다시 나에게 묻기 시작했다...
"설마 그때 그... 맞죠?"
"이제 알아보시는 군요... 에전 모습 그대로군요..."
정신을 차린듯 표정을 가다듬고 그녀는 나의 말을 받아 재빨리 ...
"그쪽은 많이 바뀌셨군요... 마지막으로 본게 5년전이었나요?"
조회수 : 21473
글쓴이 : 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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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사항 : 제가 퍼올 때 제목은 "그 아가씨 이야기"였는데, 제 글 중에 비슷한 제목이 많아서 제가 임의로 바꿨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좀 진부하다 생각되는 얘기지만, 비슷한 추억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읽으시면 남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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