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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325

비오는 날

조회 수 2097 추천 수 0 2006.04.25 18:04:22


비닐우산 두 개를 사서 돌아오며 은서를 보니 그녀는 무릎에 얼굴을 푹 파묻고 강만 보고 있다. 세 는 우산을 펴서 은서의 손에 쥐어주고 자신도 우산을 펴 썼다. 빗발은 굵어서 여기저기 벌써 빗물이 고였다. 앉아 있는 곳이 시멘트 바닥이 아니고 흙이었으면 옷에 다 흙물이번졌으리라.
얼마가 지나서 은서가 세를 바라봤다.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줄까?"


"무슨?"


"어떤 여자가 …… "


" …… "


은서는 얘기를 하다가 그만 입을 다물어버렸다. 세는 그런 은서를 잠깐 쳐다보다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어떤 여자가 어쨌어?"


불이 붙은 줄 알았는데 습계 담배불은 그냥 꺼져버렸는지 빨아도 불꽃이 일지 않았다.

"아무 얘기도 아니야."


"그래도 해봐"


"그냥 어떤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비가 오는 날 그 남자를 만났는데 남자 가 가게에서 우산을 두 개 사오더래."


" …… "


"그것이 그렇게 슬프더래."


은서는 얘기를 끊었다. 세는 들고 있던 불이 꺼진 담배를 저만큼 빗속에 내던지고서 파란 비닐우산 위로 툭툭 떨어지는 방울이그대로 미끄러져 아래로 다시 떨어지는 걸 힘없이 쳐다보고 있다. 그게 왜 슬프냐고 세는 되물을 수가 없다. 은서의 대답이 무엇인지도모르면서 세는 그저 가슴이 벅 차왔다.


"너무 슬퍼서 그 여잔 그 남자와 헤어졌대."


빗발이 점점 더 굵어졌다. 은서의 치마 세의 바지. 각자의 무릎 위에 올려놓은 은서의 핸드백, 세의 가방이 빗물에 젖었다.


"비 오는 날 애인이 우산을 두 개 사서 그것이 너무 슬퍼서 헤어졌다? 재밌지?"


대답없는 세를 가만 건너다보며 은서가 피식, 웃는데 비닐우산이 바람에 휘익, 몰려 한쪽으로 일그 러졌다.


  


  


조회수 : 11139


글쓴이 : 신경숙 - <깊은 슬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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