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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325

어느 중고 컴퓨터장사의 일기

조회 수 4525 추천 수 2 2011.12.05 15:24:28




저는 중고 컴퓨터 장사를 합니다. 

남이 쓰던 컴퓨터를 얻거나 헐값으로 사서 수리를 하고 업그레이드 하여 주로 인터넷이나 알림방 같은 곳에 

광고를 내어 장사를 하고 있는데, 얼마 전 저녁때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아는 사람 소개 받고 전화 드렸는데요. 컴퓨터를 구입하고 싶은데,  여기는 칠곡이라고 지방인데요. 

6학년 딸애가 있는데 서울에서 할머니랑 같이 있구요....  ...................(중략)...... 

사정이 넉넉치 못해서 중고라도 있으면 ........ " 



통화 내내 말끝을 자신 없이 흐리셨습니다.  

나이가 좀 있으신 목소리 입니다. 당장은 중고가 없었고 열흘이 지나서 쓸만한 게 생겼습니다 

전화 드려서 22만원 이라고 했습니다. 

주소 받아 적고 3일 후에 들고 찾아 갔습니다.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어딘지 몰라서 전화를 드리자, 

다세대 건물 옆 귀퉁이 샷시 문에서 할머니 한 분이 손짓을 하십니다. 

들어서자 지방에서 엄마가 보내준 생활비로 꾸려나가는 살림이 넉넉히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악세사리 조립하는 펼쳐진 부업거리도 보이고.....



설치 하고 테스트 하고 있는데 밖에서 소리가 들리더니 “어 컴퓨터다!" 하며 딸아이가 들어 옵니다. 

옆에서 구경하는 딸아이를 할머니가 토닥 토닥 두드리시며 

"너 공부 잘하라고 엄마가 사온거여, 학원 다녀와서 실컷 해. 어여 갔다와...." 

아이는 "에이씨~" 한마디 던지구선 후다닥~ 나갔습니다. 저도 설치 끝내고 집을 나섰습니다. 

골목길 지나고 대로변에 들어서는데 아까 그 아이가 정류장에 서있습니다.
 
"어디루 가니? 아저씨가 태워줄께...." 

보통 이렇게 말하면 안탄다 그러거나 망설이기 마련인데 "하계역이요~" 

그러길래 제 방향과는 반대쪽이지만 태워 주기로 하였습니다. 

집과 학원거리로 치면 너무 먼 거리였습니다. 마을버스도 아니고 시내버스를 탈 정도이니..

사건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한 10분 갔을까. 아이가 갑자기 화장실이 너무 급하다고 합니다.

"쫌만 더 가면 되는데 참으면 안돼?" 

"그냥 세워 주시면 안돼요?" 

패스트푸드점 건물이 보이길래 차를 세웠습니다. 

"아저씨 그냥 먼저 가세요..."

이 말 한마디 하구선 건물 속으로 사라 졌습니다. 여기까지 온 거 기다리자 하고 담배 한대 물고 

라이터를 집는 순간 가슴 속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보조석 시트에 검빨갛게 피가 있는 것입니다. 

"아차......." 첫 생리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것은, 이미 경험한 생리라면 바지가 샐 정도로
 
놔두거나 모르진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나이도 딱 맞아 떨어지고, 방금 당황한 아이 얼굴도 생각나고, 

담뱃재가 반이 타 들어갈 정도로 속에서 '어쩌나~어쩌나~' 그러고만 있었습니다. 

바지에 묻었고, 당장 처리할 물건도 없을 것이고, 아이가 화장실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텐데..  

아까 사정 봐서는 핸드폰도 분명 없을텐데...... 차에 비상등을 켜고 내려서 속옷가게를 찾았습니다. 

아, 이럴 땐 찾는 것이 진짜 없습니다. 

아까 지나온 번화가가 생각났습니다. 중앙선 넘어서 유턴해서 왔던 길로 다시 갔습니다. 아, 차가 많습니다. 

버스 중앙차로로 달렸습니다. 마음이 너무 급했습니다. 마음은 조급한데 별별 생각이 다 났습니다. 

여동생 6학년 때 첫 월경도 생각나고…, 

청량리역 거의 다 와서 속옷가게를 찾았습니다. 이런, 제가 싸이즈를 알 리가 없습니다. 젤 작은 싸이즈부터 

그 위로 2개 더 샀습니다. 속옷만 사서 될 일이 아닙니다. 아이 엄마한테 전화했으면 좋겠는데 멀리 계신데 

이런 얘기 했다가는 진짜 맘 아프실 것 같았습니다. 

집사람한테 전화 했습니다.



"어디야?" 

"나 광진구청" 

"너 지금 택시타고 빨리 청량리역...아니 걍 오면서 전화해.. 

내가 택시 찾아 갈께" 

"왜? 뭔 일인데" 



집사람에게 이차 저차 얘기 다 했습니다. 온답니다. 아, 집사람이 구세주 같습니다. 

"생리대 샀어?" 

“사러 갈라고...." 

"약국 가서 XXX 달라 그러고 없으면 XXX 사....속옷은?" 

"샀어, 바지도 하나 있어야 될꺼 같은데....." 

"근처에서 치마 하나 사오고.... 편의점 가서 아기물티슈두 하나 사와...."  



장비(?) 다 사 놓고 집사람 중간에 태우고 아까 그 건물로 갔습니다. 없으면 어쩌나....하고 꽤 조마조마 했습니다. 
시간이 꽤 흐른 것 같기 때문입니다. 집사람이 주섬주섬 챙겨서 들어갔습니다. 



"애 이름이 뭐야? "

“아..애 이름을 모른다.... 들어가서 재주껏 찾아봐...." 



집사람이 들어가니 화장실 세 칸 중에 한 칸이 닫혀 있더랍니다. 

"얘, 있니? 애기야. 아까 컴퓨터 아저씨 부인 언니야."  

뭐라 뭐라 몇 마디 더 하자 안에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네....' 하더랍니다. 

그때까지 그 안에서 혼자 소리 없이 울면서 낑낑대고 있었던 겁니다.  

다른 평범한 가정이었으면 축하 받고 보다듬과 쓰다듬, 조촐한 파티라도 할 기쁜 일인데.... 

뭔가 콧잔등이 짠 한 것이, 가슴도 답답하고, 누가 울어라 그러면 팍 울어 버릴 수 있을 것도 같고..... 

혼자 그 좁은 곳에서 어린애가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요 

차에서 기다리는데 문자가 왔습니다. 



[5분 이따 나갈께 잽싸게 꽃 한 다발 사와] 



이럴 때 뭘 의미하고 어떤 꽃을 사야 되는지 몰라서 그냥 아무거나 이쁜 거 골라서 한 다발 사왔습니다. 

건물 밖에서 꽃 들고 서 있는데. 아, 진짜 얼어 죽는 줄 알았습니다. 

둘이 나오는데 아이 눈이 팅팅 부어 있더군요. 집사람을 첨에 보고선 멋쩍게 웃더니 챙겨 간 것 보고 

그때부터 막 울더랍니다..... 

집사람도 눈물 자국이 보였습니다. 패밀리레스토랑 가서 저녁도 먹이려고 했는데 

아이가 그냥 집에 가고 싶다고 합니다. 



집에 내려다 주고 각자 일터에 가기엔 시간이 너무 어중간 했습니다 

어떻게 할까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이미 집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오면서 그 집 사정이 이러이러 한 것 같더라 하는 등의 얘기를 하면서 오는데, 

"그 컴퓨터 얼마 받고 팔았어?" 

"22만원" 

"얼마 남았어?" 

"몰라, 요번에 수원 대리점 노트북 들어가면서 깍아주구 그냥 집어온 거야..." 

"다시 가서 주고 오자.."

"뭘?"

"그냥 집어온 거면 22만원 다 남은 거네." 

"에이, 아니지. 10만원두 더 빼고 받아 온 거야." 

"그럼 10만원 남았네..... 다시 가서 계산 잘못 됐다 그러구 10만원 할머니 드리구 와." 

"아, 됐어. 그냥 가, 그건 그거구 이건 이거지. 구분은 해야지."  

"10만원 돌려주고 그래픽카드 바꿀래? 안 돌려주고 그래픽 카드 안 바꿀래?”

– 내가 꼭 바꾸고 싶어하는 그래픽카드는 너무 비싸서 집사람 결제가 안 나면 못 사는 물건..- 

뭐 망설일 여지는 전혀 없었습니다. 신나서 바로 차를 돌렸습니다....



집에 들어서니 아이가 아까와는 다르게 깔깔대고 참 명랑해 보였습니다. 

봉투에 10만원 넣어서 물건값 계산 잘못 됐다고 하고 할머니 드리고 왔습니다. 

그 자리에서 아이 엄마에게 전화해서 램 값이 내렸다는 둥 해서 대충 얼버무리고 돌려 드려야 한다니 

참 좋아 하셨습니다. 



나와서 차에 타자 집사람이 제 머리를 헝클이며 "짜식~" 그랬습니다. 

운전을 시작 했습니다. 

"어?~어디가?" 

"용산...... ㅡㅡ;" 



밤 11시 쯤 제가 새 그래픽카드를 설치하고 만끽하고 있을 무렵 전화가 왔습니다. 아이 엄마 입니다. 



"네. 여기 칠곡인데요. 컴퓨터 구입한......." 



이 첫마디 빼고 계속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저 역시 말 걸지 않고 그냥 전화기... 귀에 대고만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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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향수에 취할 수 있는 따듯한 공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댓글 '1'

Gray

2011.12.05 23:38:26

정말 소소한데.. 왠지~ 감동적이네요~^^

오랜만이네요 승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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