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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d-프롤로그

조회 수 4377 추천 수 1 2008.10.02 19:17:22


새벽 3:35분
밝은 전조등을 켠 하늘색 SM-5 승용차 한대가 자욱한 안개 속을 뚫고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고 있다.
여름의 더위가 한풀 꺾이고 시원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9월 중순인데다가 조금 전까지 보슬비가 내리다 그친지라 새벽공기가 꽤 싸늘했다. 시간이 시간인 만큼 도로에는 차량도 거의 없고 마주 오는 차량이라고는 간간히 화물트럭들만 몇 대 오고갔지만 고속도로에서 빠져 나오니 그마저 보기 힘들었다. 자동차 안에는 하얀색 셔츠를 입은 20대 초반의 남자가 조금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들으면서 운전을 하고 있었다.

“일본의 고바야시 요스케 총리는 어제 오후에 일본헌법 개정과 육상 자위대의 대대적인 개편을 발표했습니다. 지난 15일 국민투표를 거쳐 일본인 85%의 찬성을 얻어 발표된 수정헌법은 ‘평화헌법’으로 잘 알려진 헌법 제9조를 수정한 것으로, 2차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한 이후 50년이 넘게 유지되던 법조항입니다. 전쟁 포기와 전수방위 원칙을 담고 있는 이 헌법 9조를 개정하고 '군대 보유'를 명시함으로써 자위대가 정식 군대로 만들어 졌습니다. ‘평화헌법’은 몇 해 전 이라크 파병과 해외파병, 다국적군 참가 등으로 사실상 무력화된 상태였지만 헌법 개정을 원하는 일본국민들의 열망과, 전 세계 분쟁지역에 대한 일본의 적극적인 군사개입을 원하는 미국의 이익과도 맞아 떨어져 오늘의 개헌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헌법의 개정과 함께 현재 20만인 육상 자위대의 병력을 앞으로 8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50만까지 증강하고 평화헌법으로 제한받던 GDP기준 1%인 국방예산도 1.5%이상 늘리기로 합의했습니다. 미국은 이러한 일본의 움직임을 적극 환영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 동남아 등 아시아 각국에서는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다음은 정치권 뉴스입니다. 이번에 70억 뇌물수수로 물의를 빚고 있는 야당의...”

“이런! 빌어먹을 쪽바리 새끼들.. 핵을 한 번 더 맞아봐야 정신을 차리려나.”

유진은 한심하기 그지없는 정치얘기만 흘러나오는 라디오를 끄고 시디플레이어를 틀어 음악을 켰다. 자동차의 스피커에서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자 유진은 운전을 하면서 어제 저녁에서야 간신히 마무리를 지은 프로젝트에 대한 생각에 잠겼다.

‘후.. 세금 제하고 650만원 짜리 프로젝트라..
아무리 그래도 지난주부터 거의 하루에 3~4시간만 자고 SQL 서버 설치부터 연동까지 혼자서 다 하는 것은 역시 약간 무리였나. 다행히 프로젝트도 성공적으로 끝났고 보수도 괜찮은 편이니... 그래도 몇 달 동안 꽤 강행군이었군.. 일거리가 쌓이니 거의 2달을 연속해서 일한건가. 뭐 하여튼 계획대로 3주정도 푹 쉬면서 어디 여행이나 다녀와야겠는데..’

여름이 다 지나도록 해변은커녕 운동도 별로 못하고 에어컨이 쌩쌩 돌아가는 사무실 속에서 하루 종일 일만 했기 때문에 돈은 많이 벌었지만 체력이 꽤 떨어진 것 같았다. 이번 기회에 공기가 좋은 숲 속에서 몇 주 동안 쉬면서 재충전의 기회를 갖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집에 거의 다 오긴 했지만 며칠간 거의 잠을 못 잔 유진은 굉장히 피곤함을 느꼈다. 몸이 마치 젓은 솜처럼 무거웠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는 그동안 고생했던 일을 끝냈다는 성취감에 별 피로를 못 느꼈지만 몇 시간 동안 지루하게 운전을 하니 점점 피로가 몰려왔다.

노면도 미끄럽고 보슬비가 그치며 안개가 자욱하게 껴서 까딱 졸음운전을 했다가는 사고 나기 딱 좋은 상황이다. 마주 오는 차도 한 대없는 적막한 새벽의 시골길이어서 집중력이 점점 떨어졌다. 클래식음악을 틀어놓으니 더 졸린 것 같았다.

“아.. 이거 자칫 졸다간 사고 나겠군. 다른 음악을 틀어야겠다.”

이럴 때는 좀 시끄럽지만 음악을 크게 트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핸들에 부착된 카오디오의 컨트롤러로 다음 트랙으로 넘겼지만 클래식을 모아놓은 시디인지라 별로 맘에 드는 곡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액셀에서 발을 떼어 자동차의 속도를 약간 늦추고 트레이에서 시디를 빼고 다른 시디를 찾으려고 약간 한눈을 판 사이 전조등 불빛에 거무스름한 사람모양의 형체가 마치 유령처럼 나타났다.

“뭐야! 이런!”

유진은 반사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으며 핸들을 좌측으로 틀어 중앙선을 넘어 간신히 사람을 피하고 다시 본 차선으로 들어왔지만 비에 젖은 노면 때문에 타이어가 미끄러졌다.


이계인과의 만남
유진은 반사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으며 핸들을 좌측으로 틀어 중앙선을 넘어 간신히 사람을 피하고 다시 본 차선으로 들어왔지만 비에 젖은 노면 때문에 타이어가 미끄러졌다.

“끼이익.. 쿵!”

결국 갓길을 넘어 오른편의 가드레일에 살짝 긁히고서야 간신히 차를 멈출 수 있었다.

“허억.. 젠장할!”

급격한 아드레날린의 분비로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면서 머릿속이 멍해지고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뛰었다. 유진은 핸들에 머리를 기대고 잠깐 눈을 감고 깊게 심호흡을 해서 몸을 진정시킨 뒤에 차에서 내리려다가 몇 분 전 뉴스에서 들은 자해 공갈단 뉴스가 갑자기 생각났다. 도로 한복판에 갑자기 사람이 튀어나오다니.. 자살희망자가 아니고선 뭔가 이상한 일이다. 하여튼 아슬아슬하게 피하기는 했지만 사람을 치지 않은 것은 확실했다.

유진은 조수석에 던져둔 가방을 뒤져 PDA를 꺼내고 자동차의 핸드프리 커넥터에 연결된 휴대폰을 뽑아 손에 들었다. PDA의 녹음단추를 누른 후 동작을 확인하고 셔츠 포켓에 집어넣고 차에서 내려보니 50M 정도 떨어진 곳에 방금전의 사람이 주저앉아 있었다.

“이봐요? 괜찮습니까? 차에 치인 건 아니죠?”

가까이 다가며 말을 걸자 멍하니 주저앉아 있던 사람도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듯, 일어나서 옷을 털더니 유진에게로 천천히 다가왔다.

자욱한 구름이 달빛과 별빛을 가리고 있었고, 그 흔한 가로등마저 몇 개 없는 시골길, 차에서 멀어질수록 더욱 어두워졌다. 자동차와 조금 떨어진 곳이라 미등의 불빛도 닿지 않아 PDA를 꺼내 밝은 백라이트로 랜턴처럼 앞을 비추었다.
어두워서 명확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검은 천을 몸에 두르고 있었고 한쪽 옆에는 대형 트렁크가 세워져 있었다.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로브라고 불리는 망토 비슷한 옷으로 알고 있지만 코스프레의 싸구려 수제 옷에서 보듯 어딘가 어색한 구석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제길! 한밤중에 검은색 옷이라니! 이봐요.”

"@@#$%$#^@%"

‘뭐야.. 외국인인가? 어느 나라 말이야?’
“Hey! are you ok?”

유진이 영어로 물어봐도 그의 입에서는 처음 들어보는 말만 나올 뿐이었다.

검은 로브의 남자는 잠깐 기다리라는 듯이 손짓을 한 다음에 주머니에서 손가락 크기의 작은 유리병을 꺼내더니 안에 든 파란색 액체를 공중에 살짝 뿌렸다. 그리고 정신집중을 하듯 왼손을 이마에 살짝 대면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

공중에 직경 1m 정도의 원과 삼각형, 역삼각형 등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마법진이 그려지더니 밝은 빛을 내면서 유진의 머리에 은은한 푸른 빛을 비추었다.

“헉, 뭐야?. ”
유진은 깜짝 놀라면서 머리를 감싸며 뒤로 물러섰다. 뭔가 이질적인 느낌이 머리를 스쳐갔지만 두통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머릿속이 맑아지는 것 같은 청량한 느낌과 함께 언어나 말이 아닌 생각, 즉 의사가 전달되었다.

[[...내.. 생각.. 들립..니까.
이것.. 정신계... 사고전달 마법...
..짧은 시간.. 사용...
나.. 다른 차원의 인간...
차원계 포탈을 만들 수 있는 장소로 이동 중입니다.
이곳의 언어를 습득할 수 있게 도움을 바랍니다.]]

2, 3 초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뒤로 갈수록 내용이 명확해지며 대충 위와 같은 내용이 유진의 머릿속에 전송되었다.

‘다른 차원? 엇! 그럼 외계인인가? 에일리언? 그것보다 도움이라니?’
유진은 순간적으로 그동안 영화로 본 징그러운 외계인들에 대한 느낌을 떠올리며 반사적으로 한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검은 로브의 남자는 유진에게 다가가 얼굴을 가리는 로브의 모자를 벗고 한손을 가슴에 대고 천천히 상체를 숙였다.

대충 느낌으로 인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진도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그를 살펴보았다.

유진보다 조금 큰 180정도의 키를 가진 30대 중 후반정도로 보이는 남자였다.

엷게 미소 짓고 있는 얼굴에서는 속세를 벗어난 고승이나 신부님 같은 선량한 느낌이 들었다.

그의 옆에는 트렁크라고 생각했던 가로 세로 1m 정도의 커다란 네모난 가방이 30cm정도 공중에 떠있었다.

가방의 위에는 앞뒤로 주먹만한 금속재질의 공 2개가 붙어있었다.

‘뭐야 저건.. 공중에 떠 있는 건가? 와이어 액션이 아니라면.. 외계인이 맞는 거 같긴 하군.’

유진은 왠지 모르게 이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마인드 컨트롤이나 최면술이 이런 것일까? 수상한 사람에 대한 경계를 외치는 처음의 의지가 점점 사라지면서 그에 대한 호감과 믿음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조금만 더 가면 제 집이 있으니 우선 거기에 가서 얘기합시다.”

유진은 손짓으로 자동차를 가리키며 그를 길옆에 주차된 차로 이끌었다. 다행히 배수로와 떨어져 있어서 타이어도 빠지지 않았고 가드레일에 긁힌 것 빼고는 별 이상이 없었다.

‘후.. 앞 범퍼가 완전히 걸레가 됐구나. 아니지 언젠가 한번 범퍼를 갈던가 하려고 했는데 차라리 잘된 건가.’

차를 살펴보니 오른쪽 범퍼가 약간 긁히고 안으로 들어갔지만 그래도 뽑은 지 6년째 되는 중고차여서 범퍼에는 다른 기스도 몇 개 있었고 아예 이 기회에 범퍼를 갈아버리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되었다.
“자. 타십시오.”
유진은 뒷좌석을 문을 열어줘 그를 차에 태우고 집으로 향했다.

유진의 집은 산 중턱에 위치한 2층짜리 예쁜 전원주택이다. 4년 전 부모님이 서울의 아파트를 팔고 은행에서 약간의 융자를 얻어 이곳 땅을 사고 집을 지었지만 유진이 군에 있을 때 완공을 몇 주 남겨놓고 부모님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반대차선에서 마주오던 트럭운전사의 음주운전이 원인이었다. 사고이후 유진은 술을 절대 입에 대지 않는다.

이 집 외에도 부모님께서 모아놓은 재산이 조금 있었지만 그것들은 집과 유산의 상속세를 내느라 모두 사라져 버린 데다, 공사를 할 때 대출받은 은행 대출금이 아직도 8천만원 정도 남아있었다. 대출금은 5년짜리 장기상환이므로 크게 부담되는 돈은 아니다. 그동안의 저축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다. 그렇지만 빚을 지는 것에 천성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고 있어 카드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 유진이었다. 그가 1년 전 군대를 제대하고 학교에 복학하지 않고 일을 하는 것에는 고정적인 수입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대출금을 빨리 갚으려는 이유가 더 컸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작은 창고가 있고 그 안에는 기름보일러와 커다란 석유 탱크, 작은 자가 발전기 등이 있었다.
산속에 있는 콘도나 일반적인 전원주택의 경우 보통 10~20가구 정도의 작은 마을을 형성해서 건설되기 때문에 전기, 수도 등의 시설이 꽤 잘 되어있는 편이다. 그렇지만 유진의 집은 산속에 달랑 한가구만 지어놨기 때문에 도시가스는 당연히 꿈도 못 꿀 일이고, 장마철이나 태풍, 폭설이 내릴 때는 가끔 전기나 케이블선이 끊기기도 한다. 게다가 인근 마을에 비해 복구조차 늦었다.

처음에는 자가 발전기가 없었지만 집이 완공되고 몇 개월 정도 살다가 전기 때문에 크게 고생을 하고 설치한 자가 발전기이다. 한번은 겨울철에 급한 프로그램을 짜고 있는데 갑자기 전기가 5일 동안이나 나간 적이 있었다. 일반적인 정전으로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갑자기 내린 폭설로 인해 전기 줄이 끊긴 것이었다. 노트북 배터리를 이용해서 3시간정도 버티다가 할 수 없이 자동차로 가서 시동을 걸어 놓고 시거잭에 노트북 전원을 연결해서 간신히 프로그램을 마무리 지은 일이 있었다. 그 후로 바로 소형 자가 발전기를 설치했기 때문에 이제는 전기가 나가더라도 컴퓨터와 전등 정도는 충분히 사용할 수 있었다.

수도의 경우는 마침 근처에 작은 우물이 있어 그것으로 식수와 생활용수를 해결한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깨끗한 곳이라 우물물도 1급수로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리면 가끔 도롱뇽도 몇 마리 딸려 나오곤 했다.


집에 도착한 유진은 그에게 집안을 대충 안내해 주었다.
공중에 둥둥 떠서 이동하는 검은색 트렁크를 거실에 놓아두고, 손님방의 침대를 가리키며 잠을 자겠느냐고 손짓으로 묻자 그는 고개를 저으며 책장에서 책을 빼들었다. 피곤하지는 않고 언어를 익히겠다는 뜻으로 여겨졌다.
아무래도 언어를 익히는 데는 TV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그를 거실로 안내해서 TV를 틀어주고 리모컨의 사용법을 알려준 다음 서재에서 국어사전과 영어사전 등을 빼서 옆에 놓아주고 침실로 들어가 곧바로 침대에 쓰러졌다.

‘아~ 피곤하다. 샤워를 해야 되는데... 뭐 물건들이 없어지는 건 아니겠지?’

외계인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도둑질을 하지는 않겠지만 어차피 집에 있는 귀중품이라곤 TV, 냉장고 등 기본 가전제품들과 컴퓨터, 책들이 전부였다. 카드보다 현금을 선호하기 때문에 지갑에는 50만원정도의 현금과 수표가 몇 장 들어있지만 도둑맞아서 아쉬울만한 것은 신분증과 얼마 전에 새로 산 디지털 카메라 같은 것 밖에는 없다. 어차피 PDA와 노트북은 H/W 암호가 걸려있으니 가져가봤자 무용지물이고 주기적으로 백업을 해주니 데이터 걱정도 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까지 길 잃은 개나 고양이 한 마리 주워온 적이 없는데 사람을 주워오다니. 아니 사람 맞나.. 에일리언이라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설마 괴물 같은 거로 변신하지는 않겠지..’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면서 유진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계인과의 만남
두꺼운 커튼이 햇빛을 막아 유진의 방은 한밤중처럼 컴컴했다.

“으.. 몇시야?”
유진은 침대 머리 쪽을 더듬어 휴대폰을 찾아내 시간을 확인했다. 잠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며칠 동안 밤을 새서 굉장히 피곤했기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오후 3시 무렵이었다.

‘우.. 대충 10시간 정도 잔건가? 이렇게 밤샘을 밥 먹듯이 해서야.. 하룻밤 밤을 새면 수명이 한달씩 깍인다고 하지 않았었나.. 하긴 뭐.. 그렇게 따지면 10년도 넘게 줄었겠다.’

아무리 이 동네 인간들에게 밤샘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 하지만 요즘은 정도가 조금 심한 것 같았다.

유진은 머리를 흔들며 침대에서 일어나다가 새벽녘의 일이 생각났다.

‘이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아무리 피곤해도 그렇지. 집에 사람?을 데려다놓고 그냥 잠을 자버리다니.. 아니 문제는 그게 아닌가. 이거 신고를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음.. 우리나라에는 외계인을 보면 신고하라는 법률은 없지. 간첩이면 몰라도. 그럼. 불법 체류자 정도가 되려나?’

이 별장은 부모님께서 마지막으로 물려주신 소중한 곳이라 친인척은 물론 친구들도 거의 데려오지 않았었다. 집을 완공했을 때는 부모님의 교통사고와 장례 등으로 어수선한 때여서 집들이 같은 것도 하지 않았었다. 그런 곳에 안면도 없는 사람?을 데려오다니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뭔가 홀린 것 같이 이상했다. 그러고 보니 처음 만났을 때 사고를 전달한다던 그 푸른색 빛이 수상했다. 혹시라도 이상한 마법이나 최면술 같은 것을 걸어 자신을 조정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되었다.

잠으로 약간 멍한 머리를 흔들면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거실에 가보니 그는 TV를 켜놓은 채 책을 보고 있었다.



“오 일어났는가. 어제는 말이 안 통해 미처 인사도 못했군.”
“아 예. 에?? 한국어?”
유진은 갑작스레 들려오는 자연스러운 한국어에 깜짝 놀랐다. 오늘 새벽만 하더라도 간신히 손짓으로 의사소통을 하지 않았던가.

“어떤가. 저 텔레비전이라는 기계와 여기 책과 사전들로 기본적이 언어변환은 마쳤는데 말이 좀 어색하지는 않는지 모르겠군. 하여튼 문명이 발전한곳에 오니 이런 점은 좋군.”
“아닙니다. 한국어가 아주 자연스럽군요. 그보다 누구신지 좀 자세히 설명해주시지요.”
“알았네. 이거 번역이 제대로 될지 모르겠는데.. 우선 나는 정 1계의 1-1 차원계에서 온 알시엔 하임라고 하네. 알센이라고 부르게나”
“예. 알센씨, 저는 김유진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유진과 알센은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나야말로 반갑네. 막상 이곳 7-4차원계에 도착해서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했는데 덕분에 많은 도움을 받았네.”
“도움이라뇨. 집에 안내해드린 것 밖에 없는데.. 그것보다 어디서 오셨는지? 차원계가 뭡니까?”
“아.. 이곳에는 차원계라는 개념이 없지? 음 이걸 보게나. 이해하기 쉽게 대략적인 차원계 지도를 보여주지.”

알센의 손짓에 따라 탁자위에 놓인 미니마우스크기의 반구형 물체에서 몇 줄기의 빛이 나오더니 순식간에 거실 전체를 메우는 홀로그램 영상으로 변환되었다. 우주 한가운데 서있는 것처럼 수많은 항성과 행성들의 입체영상으로 거실 가득 생겨났다.
영화나 게임에서 보던 것처럼 반투명한 CG나 레이저로 만들어낸 조잡한 입체영상이 아닌 실제로 손에 잡힐 것 같이 생생한 홀로그램이었다.

“홀로그램 입니까? 굉장하군요. 이정도로 선명한 홀로그램이라니. ”

유진은 손가락으로 주변을 떠다니는 행성들을 만져보다가 깜짝 놀랐다.

“헉! 감촉이? 이거 홀로그램이 아닙니까?”
레이저를 이용한 홀로그램이 그렇듯 손가락이 그냥 통과할 꺼라 생각했던 유진은 손끝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감촉에 놀라며 질문했다.

“유질량 홀로그램이라네. 실물처럼 단단하지는 않지만 약간의 질량은 가지고 있지.”

알센이 손짓으로 홀로그램의 영상을 조정하자 태양계의 행성들이 작게 축소되면서 수광년 떨어진 외우주의 항성들이 가까이 다가왔다.

“지금 보이는 우주가 이곳, 지구라고 불려지는 곳에서 관측될 수 있는 우주네. 빛이나 전파 등을 사용한 관측으로는 이정도 우주를 관측할 수 있는 게 한계지. 그렇지만 사실은 우주는 하나가 아니라 수많은 차원계로 구분되어 있고, 내가 온 곳은 음.. 이곳의 언어로 표현한다면 ‘가이아’ 정도가 될까? 앞으로 이곳을 ‘지구’라고 하고 내가 온 곳을 ‘가이아’라 말하겠네. 하여튼 우리 가이아는 다른 차원계에 있는 지구라고 할 수 있지. 그러고 보니 이곳에도 비슷한 이론이 있더군. 자네 혹시 평행우주론에 대해서 알고 있나?”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사건에 따라 여러 가지 우주가 있을 수 있다는 이론이지요? 즉 제가 평행우주에 대해 알고 있다고 말하는 우주가 있을 수 있고 모른다고 말하는 우주가 있을 수 있다는 이론 아닙니까?”
유진도 평소에 과학잡지 등을 즐겨 읽었기 때문에 평행우주에 대한 개념정도는 알고 있었다.

“흠..뭐 대충 비슷하네. 사건에 따라 차원계가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마나의 급격한 변동에 따라 분리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하여튼 내가 사는 세계, 즉 다른 차원의 지구인 가이아는 이곳과 약 3~4만년쯤에 갈라진 것 같더군. 생태계나 생물들도 거의 흡사하고, 우리도 이곳과 비슷한 문명의 발전을 거쳐 왔네. 다만 시간의 흐름과 문명의 발전 속도 등이 조금 달라서 우리 가이아의 문명이 여기보다 약 1,500~2,000년 정도 앞서있다네.”

알센이 손짓을 하자 광대한 우주를 나타내던 입체영상이 사라지고 알센의 지구, 즉 가이아가 나타나면서 그 주변에 떠있는 수많은 콜로니와 우주선이 영상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행성 가이아가 확대 되면서 그 지면에는 초고층 빌딩과 그 사이를 오가는 수많은 호버카 들의 영상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여기가 내가 살고 있는 다른 차원의 지구, 행성 가이아라네.”

유진은 SF영화에서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발전된 문명에 놀라 입을 딱 벌리며 잠깐 동안 할 말을 잃었다.

“엄청나군요... 다른 차원이 아니라 미래의 지구. 몇 천년 후의 미래에서 왔다고 해도 믿겠는데요?”

“하하.. 타임머신 말인가?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우리에게도 불가능한 일이지.”

“그런데 지구에는 무슨 용무로 오셨는지요?”
유진과 알센은 몇 시간동안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알센이 살고 있는 지구, 행성 가이아는 과학문명과 함께 600년 전부터 마나(Mana)라 불리는 에너지의 존재가 밝혀지면서 마법문명이 찬란한 꽃을 피웠다. 양자컴퓨터와 유질량 홀로그램 장치 등을 이용해서 주변의 유동 마나를 고정시키고 마법진 형태로 변형 시킨 후 그것을 통해 각종 마법을 구현한다. 물론 사람들에 따라 컴퓨터의 도움 없이 본능적으로 마나를 느끼고, 마법진을 두뇌로 계산해서 형상화 시킨 후 마법을 구현 시킬 수 있는 일명 마법사라 불리는 사람들도 있다. 인류의 0.01%정도 밖에 안 되지만 마법의 발전에는 이 마법사들의 역할이 매우 컸다.
물론 문명이 극도로 발전한 사회에서 마법의 사용처는 주로 텔레포트 등의 이동마법과 실드 등 일부분에 한정되어 있었지만, 이동마법의 연구 중 새로운 차원계에 대한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

가이아를 기준으로 지금까지 관측된 차원계에는 정 1계부터 정 8계까지의 ‘계’가 있다. 일반적으로 ‘대 차원계’라고 불리는 각 ‘계’에는 그곳에서 갈라진 5~6개의 소 차원계가 존재한다. 커다란 나무의 큰 줄기를 대차원계로 본다면 작은 줄기들은 소차원계로 비유할 수 있겠다.

소 차원계를 이동할 때는 일반적인 텔레포트 정도의 마나밖에 소비하지 않을뿐더러 시간의 갭도 거의 없다. 그렇지만 ‘대 차원계’를 이동할 때에는 엄청난 마나의 소비와 함께 각 계마다 틀리지만 시간의 차이가 존재한다. 이것은 대 차원계마다 시간의 축이 조금씩 어긋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구가 있는 정 7계로의 이동은 왕복 약 150년 정도의 시간이 단지 차원을 이동하는데 지나가게 된다.
물론 가이아의 사람들은 대부분 유전자 조작과 의료용 나노머신을 이용해서 350~400년 정도의 평균 수명을 가지고 있지만 인생의 거의 절반에 해당되는 150년 이라는 시간은 엄청난 것이다. 차원이동의 마법이 밝혀진 것도 30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 7계로의 탐사는 알센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물론 알센 혼자 출발한 것이 아니라 조나단 S 하버와 에드노스 페이시온 2명의 동료들과 같이 왔다.
알시엔 하임은 탐사 팀을 이끄는 팀장으로 인류의 역사와 문화, 문명 등에 관련된 학위를 가지고 있다. 알센의 동료 조나단은 전투와 메카닉의 전문가이며, 에드노스는 생명공학, 환경, 지구과학의 전문가로 모두 기본적인 전투, 생존훈련을 받고 이번 탐사에 투입되었다.

차원이동 게이트는 열 수 있는 크기와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탐사장비를 많이 가져오지 못하고 반중력 제어장치가 달린 호버바이크 3대와 무인행성정찰기 등 몇 가지 기본 장비만을 가지고 정 7계로 차원이동을 했다.

정 7계에는 4개의 소 차원계가 있었고 알센의 팀은 3개의 소 차원계를 탐사하고 지구가 마지막이었다.

처음 도착한 정 7-1의 지구는 공룡들이 멸종하지 않고 각종 모습으로 진화한 파충류의 세계였다. 대기의 조성이 가이아와 조금 틀렸기 때문에 호흡기 없이는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포유류가 진화하지 못한 파충류들의 세계는 7차원계가 아닌 다른 가까운 차원계에서도 자주 발견되는 세계였기 때문에 특별히 관심을 가질만한 것이 별로 없었다. 알센 일행은 그곳에서 이틀 동안 지내면서 소형 무인행성정찰기로 행성을 촬영하고 공룡들의 혈액샘플 등을 조금 수집한 후 다음 행성으로 이동했다.

다음으로 도착한 행성은 개미처럼 군집생활을 하는 외골격을 가진 곤충 형 몬스터들이 지배하는 행성이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플라이어라는 괴상한 몬스터부터 몸길이 2km 가 넘는 거대한 샌드 웜(Sand Worm)까지 다양한 종류의 몬스터들이 있었지만 그 중 가장 수가 많고 강한 세력을 형성한 것이 ‘Bug’라고 이름 붙여진 몬스터이다.

Bug는 성체의 경우 몸길이 2~3m 정도에 단단한 각질의 갑옷을 전신에 두른 거미형의 생물로 생김새는 영화 스타쉽 트루퍼즈에 나오는 몬스터와 생김새가 조금 비슷했다. 생태학자인 에드노스가 ‘타나 유마엘’ 어쩌고 하는 길다란 이름을 붙여놓았지만 알센이나 조나단은 벌레중의 벌레라, 절지동물의 왕이라는 뜻으로 간편하게 ‘Bug’라고 불렀다.

DNA 패턴 분석결과 지구상의 생물과는 완전히 다른, 외계의 생명체 즉 에일리언으로 판단되어 포획하기로 하였다. 이렇게 거대한 생명체의 포획은 예정에 없던 일이었기 때문에 알센 일행은 호버바이크를 개조하여 간단한 케이지(우리)를 만들었다. 주 무기인 고출력 레이저에 약간의 저항을 보였지만 공중을 날아다니는 호버바이크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탐사장비 중 호버바이크는 말이 바이크지 초소형 우주선이나 다름없다. 차원계로 갈라진 곳 중에는 대기의 조성이 틀리거나 인간이 살 수 없는 곳도 있으므로 중력 제어장치를 가지는 있는 자동차 반 정도 크기의 커다란 호버바이크는 각종 무기와 함께 태양계 내의 항해능력까지 가지고 있다.

알센은 지하에 있는 Bug의 둥지를 습격해서 호버바이크 한대에 몸길이 1m 정도의 어린놈 3마리와 몬스터의 알 몇 개를 넣어서 보관하고 다음 세계로 이동했다.

정 7-3 차원계, 이곳은 중세시대 정도의 문명과 마법, 그리고 휴머노이드 형의 몬스터들이 살고 있는 대지와 공기 중에 마나가 충만한 행성이었다. 알센 일행은 7차원 계에서 처음으로 인간의 문명을 발견하고 기쁜 마음에 호버바이크를 타고 가까운 마을로 향했다가 마을 근처에서 용병단을 만나 큰 봉변을 당하게 된다.

검정색 로브 비슷한 프로텍터를 입고 호버바이크를 타고 있는 모습에서 용병단에게 흑마법사로 오인 받아, 20여명의 용병단에게 공격을 받은 것이다. 컴퓨터가 언어변환을 마치기 전이라 말도 안 통했고, 의사전달 마법을 사용하기도 전에 용병단의 마법사가, 바이크의 케이지에 들어있는 몬스터의 마기를 느끼고 선제공격을 했다. 어쩔 수 없이 레이저포로 용병들을 쓸어버렸지만 마법과 검기에 케이지가 약간의 손상을 입었다. 눈에 띄는 이상은 없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되어 호버바이크들과 장비들을 한군데 모아 평야 한가운데 있는 커다란 동굴 속에 봉인시키고, 탐사여행을 계속했다.

알센의 일행들은 2주일 동안 7-3차원계의 여러 국가와 도시들을 돌아다니며 탐사를 마치고 단거리 텔레포트를 통해 호버바이크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다가 케이지를 탈출한 Bug들의 습격을 받았다. 두 명의 동료들은 중상을 입고 알센만 간신히 경상으로 그쳤다. Bug들은 자기들의 행성에서 보다 10배정도 높은 마나의 영향으로 강력한 몬스터가 되어, 임시로 만든 데가 용병들의 공격에 약해져 있던 우리를 탈출한 것이다. 주변 마나와의 동일화 능력으로 탐지기에도 잘 잡히지 않았고 텔레포트 게이트를 통과해서 막 탐지기의 정보가 갱신되는 시간에 일행을 기습을 하여 조나단과 에드에게 중상을 입힌다. 알센은 중상을 입은 두명을 끌고 남은 에너지로 안전지대로 텔레포트를 하여 간신히 목숨을 구했다. 의료용 나노머신을 이용해서 동료들에게 간단한 응급처치를 한 다음 호버바이크 2대에 태워서 대 차원 게이트를 열어 가이아로 돌려보냈다.
알센 혼자남아 상처를 치료하고 Bug의 처리문제로 고심하다가 지구로 넘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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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초 시공 전쟁 임진왜란도 다시 연재합니다..

이카루스

2008.10.02 22:45:31

고유명사가 많아서 읽기 힘들긴 한데 열심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ㅋ 앞으로 건필해주세요~!ㅋㅋ

霧影

2008.10.03 09:02:08

네 열심히하겠습니다만...초시공전쟁 임진왜란좀 봐주시길..

다나디스

2008.10.23 21:19:36

음음 초 시공 전쟁 임진왜란? 오오! 왠지 왜란종결자랑 비슷한데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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